1997년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한보그룹 특혜대출 비리’ 사건은 검찰 수사 끝에 김영삼 대통령의 아들인 현철 씨가 구속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현직 대통령의 아들을 구속시키는 것은 쉽지 않았다. 청와대는 “대통령의 아들을 구속하는 것은 곧 대통령을 건드리는 것”이라며 구속 불가론을 강하게 주장했다. 대통령비서실장이 검찰에 “지금 각하께서 울고 계시다”며 압력을 넣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 대검 중수부장이던 심재륜 전 부산고검장은 정권과 검찰 안팎의 압력에도 “중수부장은 국민이 뽑아준 것”이라며 구속을 강행해 ‘국민의 중수부장’이란 애칭을 얻었다.
대검 중수부는 이처럼 국민의 지지를 받기도 했지만 때로는 정치적 논란에 휘말려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이런 중수부가 2013년 4월 폐지된 지 약 3년 만에 ‘부패범죄특별수사단’에 바통을 넘겼다. 동아일보는 윤곽이 드러난 특별수사단 출범에 맞춰 심재륜 전 부산고검장(72), 김종빈 전 검찰총장(69), 박영수 전 서울고검장(64), 김경수 전 대구고검장(56) 등 옛 중수부 출신 전현직 검사들에게 특별수사단이 성공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들어봤다.
현철 씨 구속 이후 지방 고검장으로 ‘좌천성 영전’한 심 전 고검장은 특별수사단 지휘부에 “‘칼에는 (주인을 보는) 눈이 없다. 외압에 꺾인 수사는 결국 부메랑이 돼 자신을 찌를 것”이라며 “검사의 꽃이 된다는 생각으로 수사에 임하라”고 당부했다. 한보비리 수사 당시 중수부 드림팀에는 김수남 현 검찰총장도 있었다. 심 전 고검장은 “중수부가 언론과 국민적 관심에 포위된 것이야말로 권력에 개입 여지를 주지 않은 힘의 원천이었다”고 회고했다.
2002년 중수부장을 지내며 이용호 게이트에 연루된 김대중 대통령의 차남 홍업 씨를 구속시킨 김종빈 전 검찰총장도 “총장은 최후 보직이란 생각으로 ‘외풍막이’ 역할을 해야 한다”며 수사의 정치적 중립성을 강조했다. 당시 수사팀은 기밀 보안을 유지하기 위해 서류 없이 구두로만 보고하며 수사를 성공시켰다.
마지막 중수부장이었던 김경수 전 대구고검장은 “과거 중수부는 서로 잘 아는 선후배끼리 끌어주는 폐쇄성 때문에 검찰 내부의 불만도 많았다. ‘내 사람 심기’나 동색(同色)으로 인사하면 실패한다”며 인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또 “지휘부가 수사의 경중과 강약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조절하느냐가 특별수사단의 성패를 좌우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현대자동차, 론스타 수사를 맡으며 ‘재벌 저승사자’로 불린 박영수 전 서울고검장은 “디지털 및 회계분석, 계좌추적 등 중수부의 장점이었던 첨단 수사지원 역량을 함께 재건해야 한다”고 했다. 대검 중수과장 출신의 한 관계자는 특별수사단이 충분한 정보 수집과 내사를 통해 오래 걸리더라도 신중하게 수사 대상을 선택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다른 중수부 출신 검사들은 공통적으로 “중수부 시절 정치권의 하명수사는 거의 없었다”며 수사 테마 선정은 검찰이 독립적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익명을 요구한 법무부 장관 출신 변호사는 “검찰총장이 되는 것보다 거악을 잡는 특별수사를 하는 것을 더 명예롭게 여기던 시절이 다시 열리기 바란다”며 특별수사단의 성공을 기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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