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이미현]‘사시 존치론’에 또 흔들릴 순 없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월 8일 03시 00분


사시 폐단 보완 위해 10년 논의 끝 도입한 로스쿨
이제 겨우 정착단계인데 일부 문제점 있다고 사시 존치 주장은 부적절
로스쿨 틀 안에서 단점 해소해 나가는 게 최선

이미현 객원논설위원 연세대 법학과 교수
이미현 객원논설위원 연세대 법학과 교수
사법시험 폐지를 당분간 유예한다는 법무부의 작년 12월 발표 이후, 사시 존치 여부를 놓고, ‘돈스쿨’ ‘음서제’ ‘고시 낭인의 양산’ ‘대학 교육의 황폐화’ 등의 용어가 난무하는 치열한 공방이 계속되고 있다. 이러한 사태를 지켜보며 많은 사람이 필자에게 묻는다. 도대체 왜 갑자기 이 야단이냐고.

로스쿨 제도와 사법시험 제도는 법률가 양성이란 동일한 목표를 서로 다른 방법에 의해 추구한 제도이다. 전자가 민간 영역에서의 교육을 통한 양성 제도라면 후자는 국가 주도적인 양성 제도다. 필자는 사시 출신 변호사이고, 1995년 로스쿨 제도 도입 여부에 관한 논의가 시작됐을 무렵에는 사실 반대론자였다. 인간이 만든 제도들이 늘 그러하듯이 두 제도 역시 장단점을 동시에 갖고 있는지라 이미 50년 가까이 시행해 온 사시 제도를 보완하는 것이 완전히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는 것보다는 사회적 비용 면에서 훨씬 효율적이라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당시 상당히 많은 법조인이 같은 생각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10년 가까이 끌어온 논의에 대해 2004년 구성된 사법개혁위원회가 내린 결론은 로스쿨 제도로의 전환이었고, 2005년부터 3년간 국회 심의를 거쳐 2007년 7월 27일 ‘법학전문대학원 설치·운영에 관한 법률’이 제정됐다. 그 후 1년 반의 준비 과정을 거쳐 마침내 2009년 전국에 25개의 법학전문대학원이 개원했다. 이렇게 법률가 양성 제도를 로스쿨 제도로 전환한 이상 사시는 사라지는 것이 당연한 수순이지만, 로스쿨 도입 이전에 사시를 전제로 이미 법과대학에 진학한 사람들의 기대보호를 위해 2017년까지 7년의 유예기간을 두는 것으로 규정했다.

10여 년 전의 이러한 선택이 과연 최선이었는지에 대한 판단은 각자 다를 수 있다. 하지만, 혹시 당시의 결정이 최선이 아니었을지라도 이미 막대한 비용과 노력을 투자해 로스쿨 제도로 전환한 현 시점에서 로스쿨 제도의 폐단을 거론하며 사시 존치를 주장하는 것은 더 이상 적절하지 않다. 로스쿨 제도가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하다면 그 도입 여부를 놓고 10년 이상 논의를 했을 리가 없다. 사시 제도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면 굳이 로스쿨로 전환하자는 논의가 시작되었을 리도 없다. 그렇기에 단순한 사시 존치는 로스쿨의 폐단을 해소하는 방안으로는 부족하다.

새로운 제도의 도입 과정에서는 그 장단점이 상당 부분 패키지로 따라 들어오는 것이 어쩔 수 없는 현실이기에 이 시점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이미 도입한 로스쿨 제도의 폐단을 최소화하기 위한 노력뿐이다. 백지에 그림을 그리려 할 때와 이미 그려진 그림을 고칠 때의 붓놀림이 다른 것처럼, 로스쿨 제도가 도입된 현 시점에서의 논의는 로스쿨 제도의 틀 안에서 그 단점들을 어떻게 보완할 것인가로 한정하는 것이 마땅하다.

예를 들면 사시 존치론자들이 거론하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 문제만 해도 그렇다. 고액의 등록금을 본인이 부담하는 로스쿨 제도는 시험으로 선발된 예비 법조인들에게 사법연수원에서 국비로 실무교육을 제공함으로써 이론과 실무능력이 겸비된 법률가로 양성하는 사시제도에 비해 상대적으로 사회적 약자에게 불리하다고 할 수 있다. 이런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로스쿨에서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전액장학금 제도를 운영하고 있지만, 한정된 재원으로 수혜자의 폭이 다소 제한적일 뿐 아니라 이로 인해 다른 학생들은 더 높은 등록금을 부담해야 하는 부작용이 있다. 따라서 장기적으로 보다 효율적인 해결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지만 그렇다고 바로 사시 존치를 거론하는 것은 이제 정착 중인 로스쿨 제도의 근간을 흔들 뿐 아니라 그다지 합리적인 제안이라고 할 수도 없다.

그동안 사회적 약자들이 사시를 거쳐 법조인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사법연수원을 운영함으로써 법률가 양성에 필수적인 실무교육 비용을 세금으로 부담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시에 합격할 가능성이 있는 소수의 사회적 약자를 위해 합격자 전원의 실무교육 비용을 국비로 부담하는 것이 과연 효율적인 세금 운용이라 할 수 있을까? 이보다는 사법연수원 운영에 필요한 비용을 공적기금으로 조성하여 로스쿨에 진학하려는 사회적 약자들의 등록금을 지원하는 것이 보다 효과적일 것이다. 물론 사회적 약자들의 수많은 꿈 중 법조인이 되고자 하는 꿈에 대해서만 세금으로 지원하는 당위성에 대해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는 것을 전제로 말이다.

이미현 객원논설위원 연세대 법학과 교수
#로스쿨#사법시험#변호사#법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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