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정 대타협 힘겹게 통과시켰지만… 김동만 한국노총 위원장이 지난해 9월 14일 서울 영등포구
노총회관에서 중앙집행위원회를 속개하기 위해 회의장 안으로 들어가고 있다. 당시 김만재 금속노련 위원장이 노사정합의문 승인에
반대하며 분신을 시도하자 정회가 되기도 했다. 동아일보DB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의 노사정 합의 파기 선언이 초읽기에 들어가면서 지난해 9월 15일 대타협 이후 118일 만에 노동개혁 논의가 원점으로 돌아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정부는 한국노총의 합의 파기 여부와 상관없이 일반해고와 취업규칙 변경에 대한 2대 지침 및 5대 입법 등 노동개혁을 계획대로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노사정 합의가 파기되면 개혁의 동력이 크게 상실되고, 야당의 반대 명분이 더 커지면서 입법도 더 어려워질 것으로 전망돼 정부의 고민도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선 한국노총이 파기를 유보할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다.
○ 노동계 ‘마이웨이’, 정부 “설득 안 되면”
한국노총은 11일 서울 영등포구 노총회관에서 중앙집행위원회(중집)를 열고 9·15 대타협 파기 및 노사정위원회 탈퇴 여부를 논의한다. 중집은 산별노조 위원장, 지역본부 의장 등 52명이 참석하는 최고의사결정기구. 김동만 위원장은 파기로 마음을 굳힌 것으로 알려졌고, 중집 위원 다수도 파기에 동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노총 관계자는 “뚜껑을 열어봐야 알겠지만 합의 파기가 의결될 가능성이 매우 높은 상황”이라고 밝혔다. 애초부터 노사정 대타협을 반대했던 금속노련과 공공연맹, 화학노련은 물론이고 중도파였던 금융노조마저 파기로 돌아선 만큼 표결을 하더라도 파기가 의결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많다.
이에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끝까지 설득해 보겠지만 합의가 파기되더라도 정부는 할 일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즉각 ‘플랜 B’를 가동해 2대 지침을 확정하고 이달 안에 각 지방관서에 배포해 시행하겠다는 것.
그러나 노사정 합의가 파기되면 정책 추진력이 크게 떨어진다는 게 문제다. 정부가 노동개혁을 추진하는 가장 큰 명분이 노사정 대타협이기 때문이다. 대타협이 파기되면 대타협을 인정하지 않아온 야당의 노동개혁 반대 명분은 더 커진다. 2월부터는 국회가 총선 체제로 들어가기 때문에 임시국회가 열려도 법안이 처리될 가능성은 낮다. 국회에 계류 중인 노동 5대 입법을 처리하려면 직권상정이 필요하다. 그러나 직권상정의 요건을 완화시키려는 여당의 국회선진화법 개정 움직임은 야당과 국회의장의 반대에 막혀 실현 가능성이 높지 않다.
한국노총은 노사정위원회를 탈퇴할 경우 거리로 나서 대정부 투쟁을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과 동시 총파업 등 연대투쟁도 고려하고 있다. 이미 금속 등 제조부문 노조는 창구를 단일화해서 양대 노총이 같은 목소리를 내고 있다. 양대 노총의 공동 총파업은 정리해고가 법제화됐던 1997년이 마지막이다. 다만 지난해 폭력 시위의 배후 조종 의혹으로 비판을 받고 있는 민주노총과 연대를 하는 건 큰 부담이다. 이 때문에 4월 총선을 앞두고 한국노총 내 온건파와 강경파 간 내분이 격화할 가능성도 있다.
○ 노사현장 혼란 극심해질 듯
노사정 합의 파기의 가장 큰 피해는 결국 현장의 노사가 될 것 같다. 양대 노총은 정부가 2대 지침을 확정해 시행할 경우 소송 등 법적 대응에 나설 방침이다. 사용자가 정부 지침을 근거로 저(低)성과자를 해고하거나 취업규칙을 변경하면 무효 소송을 낸다는 것. 이 경우 대법원이 정부 지침을 뒤집었던 통상임금처럼 법적 분쟁이 폭증하는 등 노사 현장의 갈등이 심해질 수밖에 없다.
변수는 한국노총이 11일 중집에서 만장일치 또는 지도부 위임으로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표결에 들어가는 경우. 표결에선 온건파의 입장이 대거 반영돼 합의가 유지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보수 성향으로 새누리당과 가까운 한국운수물류노동조합총연합회(물류총련) 등은 여전히 노사정 합의 유지를 주장한다. 새누리당이 총선마다 한국노총 출신 2명 정도를 비례대표로 배정해 왔던 관행을 감안하면 대타협 파기로 인한 정치권 진출 문제로 중집에서 갈등이 표면화하거나 김동만 위원장의 사퇴론이 불거질 수 있다.
고용부 관계자는 “한국노총이 합의를 쉽게 파기할 수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정치적 부담도 있고, 노사정 합의를 유지하자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고 말했다. 한국노총 관계자는 “분위기는 파기 쪽으로 가고 있지만 중집 위원들 마음이야 회의에 와서 달라질 수도 있고 아직 마음을 못 정한 사람들도 있는 것 같다”고 전했다. 가능성이 높지는 않지만 2대 지침 철회 등을 전제로 조건부 합의 유지가 의결될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 하지만 이는 정부가 받아들이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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