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총선을 앞두고 해묵은 복지논쟁이 재발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서울시의 청년수당을 두고 논란이 이어지는 가운데, 성남시가 3대 무상복지 시행에 들어갔다.
복지논쟁은 2010년 지방선거 무상급식 논쟁에서 본격적으로 점화되었지만 무상급식의 판정승으로 끝났다. 최근 일부 지방이 주장하는 무상복지는 2012년 총선과 2012년 대선 과정에서 보편적 복지와 선별적 복지의 선택을 두고 이뤄졌던 거대 담론과 달리 매우 한정적이다. 복지정책의 큰 방향을 두고 이뤄지는 게 아니라 일부 지자체가 자신들의 복지정책을 자랑하는 성격에 가깝기 때문이다. 성남시가 시행하려는 산후조리 지원 56억 원 등 3대 무상복지는 그 내용에 있어서 매우 지엽적이다.
서울시의 청년수당 역시 정기 소득이 없는 미취업자이면서 사회활동 의지를 갖춘 청년 3000여 명에게 최장 6개월간 교육비와 교통비 등 월 50만 원을 지원한다는 점에서 얼마나 시급성이 있는지 의문시된다.
무상복지는 외형상으론 공짜복지라고 할 수 있다. 당장의 비용 지불 없이 학교에서 급식을 받고, 병·의원에서 치료받고, 보육시설에 아이를 맡길 수 있는 제도를 싫어할 국민은 그리 많지 않다. 문제는 알고 보면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데 있다. 특히 국가가 하는 모든 일은 국민 부담 증가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그 폐해를 지나칠 수 없다. 올해 총선을 앞두고 경쟁적으로 이런 의제를 꺼내 논쟁을 유발하는 것은 ‘표퓰리즘’(표·票+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의 합성어)이라는 의심을 받게 한다.
지자체가 의지가 있고 능력이 있다면 실정에 맞는 복지제도를 시행하는 것 자체를 무조건 비판할 필요는 없다. 문제는 이런 지자체들이 법적으로 해야 하는 복지사업에 대한 예산 배정은 거부한다는 데 있다. 법에서 정한 누리과정 예산의 편성은 거부하면서 우선순위 측면에서 검증되지 않는 복지사업을 신규로 시행하겠다는 것은 무슨 의도에서인가.
누리과정은 여야가 합의해 시행하고 있는 사업이다. 무상보육은 대선공약이기 때문에, 그리고 지자체의 동의 없이 제정되었기 때문에 반대한다는 주장은 논거가 취약하다. 대선공약은 반드시 국비로 시행해야 한다는 이론과 법칙이 어디에 있는가. 더욱이 누리과정은 현 대통령 임기가 시작되기 전에 여야 합의로 시행된 것이다. 특히 어렵게 아이를 낳아 키우고 있는 학부모를 볼모로 줄다리기를 하는 것은 보기에도 좋지 않다. 공방만 거듭할 게 아니라 솔로몬의 지혜를 만들어 내야 할 시점이다.
지금 문제의 근본은 복지재원 부족에 있다. 중앙정부나 지자체나 복지사업에 충당할 돈이 넉넉지 않다. 인구 고령화가 심화되고 복지수요는 빠르게 증가하지만 경제는 저성장 국면으로 빠져들고 있고 팍팍해지는 국민의 호주머니에서 돈을 낼 수 있는 여력은 감소하고 있다.
최근 신규 복지 사업을 서두르는 곳은 그래도 재정이 괜찮은 지자체들이다. 특히 지난해 부동산 경기 활성화로 세수 확보에 여유가 생긴 서울과 경기 지역 일부 지자체가 단기적인 재정 여력에 기반을 둔, 선심성이라고 오해받을 만한 복지제도를 많이 내놓고 있다. 그러나 재정이 어려운 지자체가 훨씬 더 많은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그렇지 않아도 수도권과 그 외 지역 간의 경제력 격차가 확대되고 있는 상황에서 ‘복지 차별’마저 커진다면 갈등을 더욱 조장하는 결과를 만들지 않을까 우려된다. 정치 색채가 강한 선심성 복지가 아닌, 지속가능한 책임 있는 복지만이 궁극적으로 국민을 행복하게 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