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이진]忘憂草를 대하는 자세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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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와 ‘배따라기’를 쓴 소설가 김동인은 “한 모금의 연초가 막힌 생각을 트게 한다”며 흡연 예찬론을 펼쳤다. 니코틴은 뇌혈관을 자극해 사고를 촉진하는 효과가 있다. 작가들이 창작의 동반자로 담배를 피운다면 서민은 고단한 인생살이에서 불쑥불쑥 솟아나는 불안감이나 압박감을 달래려고 담배를 찾는다. 그래서 담배를 망우초(忘憂草)라고 하지 않던가.

▷2016년 새해, 가장 많이 결심한 목표로 여성이 다이어트를 꼽는다면 남성은 금연을 꼽을 것이다. 금주와 금연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라면 열에 아홉은 금연을 고른다. 그만큼 마음으로는 담배를 멀리하고 싶어도 중독성이 강해 스트레스가 담배 연기와 함께 날아가는 쾌감을 좀체 잊지 못한다. 상당수 ‘작심삼일(作心三日)파’는 다음 달이나 하반기, 아니면 내년으로 금연 목표를 슬그머니 미뤘을지 모른다.

▷정부는 지난해 담배에 붙는 세금을 올리면서 담뱃값을 평균 2000원 인상했다. 담뱃값을 올리면 흡연자들의 호주머니 사정이 어려워져 금연을 많이 할 것이라며 ‘인상의 순기능’을 강조했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작년에 도소매점에서 팔린 담배는 전년도보다 23.7% 줄었다. 성인 남성의 흡연율도 35%로 전년에 비해 5.8%포인트 감소했다. 여기까지 보면 담뱃값 인상 정책이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 정부 당국자도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고 자평했다.

▷담뱃값을 올리면서 정부가 강조한 것이 “흡연율이 전년보다 8%포인트쯤 준다”는 점이었다. 흡연율이 5.8%포인트 감소했다지만 연평균 3.1%포인트인 자연 감소분을 빼고 나면 실제 줄어든 건 2.7%포인트에 불과하다. 게다가 담배 판매로 더 거둬들인 세금은 당초 정부가 전망했던 2조8000억 원보다 8000억 원이나 많은 3조6000억 원이다. 이 중 건강증진부담금 등으로 쓰인 건 1조2000억 원 정도다. 결국 끽연가들이 나라 살림에 쌈짓돈을 보탰다는 얘기다. 정부가 흡연율 낮추겠다는 핑계로 담뱃값부터 만지작거릴 일이 아니었다. 서민 살림살이가 더 팍팍하지 않게 도와주는 것이 먼저다.

이진 논설위원 leej@donga.com
#니코틴#담배#망우초#담뱃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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