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5월 백모 씨(47)는 한 청소용역업체에 취직했다. 버스전용차로 정류장을 청소하는 곳이다. 백 씨의 출근시간은 오후 10시. 서울 서초구의 사무실에 도착한 그는 동료들과 함께 승합차에 몸을 실었다. 승합차 안에는 물 500L와 각종 청소도구가 실렸다. 백 씨와 동료들이 향한 곳은 버스가 쌩쌩 달리는 서울 도심의 버스전용차로. 마지막 버스가 지나면 백 씨의 일이 시작됐다.
백 씨는 정류장 광고판을 비롯해 높이 3m의 지붕 위에 올라가 걸레질을 했다. 지붕 위에서 작업할 때 시속 100km가 넘는 차량이 지나가면 온 몸이 흔들렸다. 그러나 몸을 지탱할 수 있는 안전장비는 아무것도 없었다. 업무량은 갈수록 늘었다. 불과 4시간 안에 정류장 15곳을 청소해야 했다. 보통 1곳 청소에 15분이 걸리지만 이동거리까지 감안하면 빠듯한 시간이었다.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르면 추락 우려가 있는 높이 1.5∼2m 이상에서 작업을 할 경우 반드시 안전장비를 착용해야 한다. 하지만 백 씨 등은 회사 측으로부터 어떤 안전장비도 받지 못했다. 더 이상 ‘목숨 걸고’ 일하는 것이 어렵다고 판단한 백 씨와 동료 7명은 2014년 9월 서울시 담당 부서에 민원을 제기했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대기발령과 하청업체 계약 해지에 따른 실직이었다.
지난해 1월 새로운 하청업체가 서울시의 일감을 맡았지만 ‘미운털’이 박힌 백 씨 등은 다시 일터로 돌아가지 못했다. 결국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서울시의 공익 신고창구인 ‘원순씨 핫라인’의 문을 두드렸다. 부실한 안전대책과 함께 하청업체의 협약 위반을 고발한 것이다. 당초 업체는 연간 정류장 청소 7896회, 바닥 청소 774회를 하기로 협약을 맺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각각 5006회와 16회만 실시했다. 조사를 벌인 서울시는 업체가 부당이득을 취득했다고 결론짓고 협약 준수를 명령했다.
같은 해 4월 백 씨 등 8명의 청소근로자는 서울시 공익제보지원위원회로부터 ‘공익제보자(공익 목적의 내부고발자)’로 인정받았다. 서울시는 내부고발자를 보호하기 위해 2013년 8월 ‘공익제보 보호 및 지원에 관한 조례’를 제정했다. 백 씨 등은 이 조례에 따라 인정된 최초의 공익제보자였다. 서울시는 이들의 제보를 바탕으로 버스중앙차로 청소를 급수차로 변경하는 등 강화된 안전대책을 도입했다. 하청업체의 협약 위반도 ‘부패신고’로 인정받았다. 공익제보지원위는 서울시에 ‘이들의 재취업을 지원하라’고 권고했다.
백 씨 등은 마음고생을 끝내고 다시 일터로 향할 것이라는 기대에 부풀었다. 그러나 이들은 해가 바뀐 지금까지 일을 하지 못하고 있다. 백 씨는 “서울시 고위 관계자가 직접 공공시설 관리 분야의 취업을 돕겠다고 약속했지만 실무자는 단순 취업정보만 알려주는 데 그쳤다”고 주장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괜히 공익제보를 했다는 후회까지 하는 실정이다. 공익제보자를 위한 서울시 지원 대상이 치료비나 소송비 등 극히 일부에 제한됐기 때문이다. 취업지원 기준도 모호해 오히려 공익제보자 재취업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지난해 말까지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적합한 일자리가 나지 않아 기다리는 상황”이라고 해명했다.
이지문 한국공익신고지원센터 소장은 “현행 서울시 조례는 ‘권고’ 수준이어서 공익제보자 지원에 한계가 있다”며 “취업지원금이나 직업교육이라도 제공하는 실질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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