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이 그제 강영원 전 한국석유공사 사장의 배임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1심 재판부를 강하게 비판했다. 이 지검장은 “강영원 전 사장은 석유개발회사 하비스트의 정유공장을 인수하면서 3일 만에 묻지마 식 계약을 하고 이사회에 허위 보고해 결국 1조3000억 원이 넘는 천문학적 손실이 났다”며 “재판 과정에서 손실이 인정됐는데 형사책임을 물을 수 없다 하니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검찰 2인자’로 통하는 서울중앙지검장이 기자실을 찾아 법원을 규탄한 것은 가볍게 볼 사안이 아니다.
강 전 사장은 작년 3월 이완구 당시 국무총리가 ‘부패와의 전쟁’ 담화를 발표한 뒤 착수된 해외자원 개발비리 수사의 첫 거물 구속자다. 박근혜 대통령은 5일 국무회의에서도 “경제활성화를 갉아먹는 적폐를 척결해야 한다”고 부정부패 척결을 강조했다. 이런 시기에 1조 원이 넘는 손실을 낸 배임 사건에서 무죄 판결이 나자 ‘부실 수사’라는 눈총을 무마하기 위해 이 지검장이 총대를 멘 것 같다.
1심 재판부는 “배임 혐의가 제대로 입증되지 않았고 경영평가를 만회하기 위한 것이라는 동기도 인정하기 힘들다”고 무죄 이유를 밝혔다. 그렇다면 검찰은 기소 내용 중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 항소심 법정에서 다투면 될 일이다. 이 지검장의 돌출 행동은 자칫 사법권 침해 논란으로 비화할 소지가 있다. 원칙을 중시하는 그의 성품으로 미루어 ‘보이지 않는 손’이 있다는 뒷말까지 나온다.
석유공사가 캐나다 자원개발업체인 하비스트의 정유 부문 자회사를 부실 인수해 거액의 손실을 끼친 죄를 묻겠다는 검찰의 의욕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경영 판단에 속하는 문제를 배임죄로 처벌하려면 그만큼 철저한 수사와 입증이 필요하다. 과연 수사팀이 수사에 최선을 다했는가. 검찰의 자성이 필요한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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