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고미석]은퇴 부부의 백세인생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월 13일 03시 00분


코멘트
일본에서 ‘와시모족’은 정년퇴직 후 부인이 외출할 때마다 눈치 없이 “나도 갈래” 하고 따라나서는 남편을 일컫는 말이다. 남편을 아내가 앓는 온갖 병의 근원으로 지목해 ‘부원병(夫源病)’이란 신조어도 있다. 우리나라 주부들은 은퇴 후 집에서 하루 세 끼를 챙겨 먹는 남편을 ‘삼식이’라 부른다. 2006년부터 은퇴자 부부 91쌍을 추적 조사한 논문에 따르면 은퇴 1년 뒤 건강이 나빠진 비율은 은퇴자 28.6%, 아내 40.7%였다. 아내의 건강을 해친 주된 원인으로 ‘삼식이 스트레스’가 꼽혔다.

▷은퇴한 남편이 집에 머무르는 시간과 아내의 스트레스 지수가 비례한다는 얘기가 있다. 배우자를 유일한 사회활동의 창구로 받아들이는 와시모족 남편을 둔 아내라면 한숨은 더 깊어진다. “노후에 함께할 시간이 많아진 것에 대한 준비가 없었고, 돈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서로 쌓아놓은 마음이 없는 것이….” 어느 은퇴자 아내의 고백은 경제적 준비와 함께 부부의 심리적 준비가 노후설계에 필수적임을 일깨운다.

▷은퇴 후 부부는 수면시간 빼고 하루 4시간 10분을 같이 보내고, 주로 하는 일은 ‘TV 시청’으로 나타났다. 어제 미래에셋은퇴연구소가 만 60∼74세 은퇴자 600명 대상 대면 설문조사를 분석해 내놓은 결과다. 한데 부부가 같이 지내는 시간과 관련해 ‘줄이고 싶다’(34.9%)는 응답이 ‘늘리고 싶다’(5.9%)보다 6배 가까이 많은 점이 흥미롭다. 하기야 남편이 집안일도 돕지 않으면서 시시콜콜 잔소리만 늘어놓는다면 짜증이 치솟을 법도 하다.

▷‘백세인생’이란 표현대로 은퇴 후 부부가 30년 넘게 함께 살아야 하는 시대가 눈앞에 닥쳤다. 은퇴 시점에 맞춰 부부간에도 새로운 룰이 요구된다. 미국의 심리학자 세라 요게브의 책 ‘행복한 은퇴’에 실린 부부생활 10계명 중 ‘상대의 물리적 정신적 공간을 허락하라’는 항목이 눈길을 끈다. 편안한 노후를 위해 서로 사생활을 존중하고 자유를 허하는, ‘따로 또 같이’의 지혜가 필요하다. 은퇴 이후 삶을 천국 혹은 지옥으로 만드는 것, 부부의 선택에 달렸다.

고미석 논설위원 mskoh119@donga.com
#백세인생#은퇴#은퇴부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