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님은 이 글씨가 정말 보이십니까?”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월 14일 03시 00분


‘1mm 약관’ 무죄에 ‘1mm 글씨’ 항의 편지
경실련 등 13개 시민단체… 홈플러스 판결 재판부에 보내

“판사님은 이 글씨가 정말 보이십니까?”

12일 서울중앙지법에 이런 제목이 달린 특이한 문건이 도착했다. 제목만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을 뿐, 높이와 폭 1mm 크기의 본문 내용은 돋보기로 확대해 봐야 제대로 알아볼 수 있는 수준이었다. 장난 편지처럼 보이는 이 문건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과 참여연대,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 등 13개 시민단체가 보낸 항의 서한(사진)이었다.

항의문 수신인은 8일 홈플러스의 고객 개인정보 2000만 건 유출 사건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서울중앙지법 부상준 부장판사와 검찰이었다. 홈플러스는 경품 행사를 가장해 수집한 고객 정보를 보험사에 판매해 231억 원의 이득을 취한 혐의로 재판을 받았다. 당시 홈플러스는 응모권 하단에 1mm 크기의 ‘개인정보 활용 동의’ 문구를 썼다. 재판부는 선고를 통해 “1mm 크기 글씨를 사람이 읽을 수 없는 정도라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이에 항의하기 위해 시민단체들이 ‘1mm 편지’를 보낸 것이다.

시민단체들은 항의문에서 “이번 판결은 국민의 상식에서 벗어나 기업의 손을 들어준 것에 불과하다”며 “사법부가 국민 개인정보를 팔아 이익을 남기는 불법 행위를 옹호해준 것”이라고 비판했다. 또 “직접 확인해 보십시오. 첨부한 1mm 서한 내용이 보이십니까? 이 서한은 도저히 인지할 수 없습니다”라고 덧붙였다. 시민단체에 따르면 해당 사건과 관련해 4건 이상의 민사 재판도 진행되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측은 해당 서한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홈플러스 관계자는 “응모권 크기가 정해져 있는데 다양한 법적 표시사항을 포함시키다 보니 글자 크기가 작아졌다”며 “응모함에는 약관을 A4 용지로 확대해 붙여 두는 등 노력을 기울였다”고 말했다.

박재명 기자 jmpark@donga.com
#1mm약관#무죄#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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