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 부족을 이유로 들며 누리과정 예산을 0원으로 전액 삭감한 서울시의회가 지역구 관리를 위한 선심성 사업에는 예산을 대폭 증액한 사실이 드러나 논란이 일고 있다. 시의회는 지난해 서울시교육청이 제출한 2016년 학교 시설사업 관련 예산을 심의하는 과정에서 ‘쪽지 예산’을 통해 원안의 30%에 육박하는 금액인 575억 원을 증액한 것으로 드러났다.
14일 서울시교육청과 서울시의회 등에 따르면 시교육청은 당초 2016년 시설사업비 중 학교시설 증개축과 교육환경 개선을 위한 사업 예산으로 2055억 원을 편성했는데, 시의회 심의를 거치면서 당초 예산의 28%인 575억 원이 늘어난 2630억 원이 의결된 것이다.
학교 시설사업 관련 예산은 수요가 상당히 많은 데 비해 예산이 한정돼 있어 교육청이 수개월간의 평가 작업을 거쳐 정밀하게 예산안을 짜는 과정을 거친다. 시교육청이 노후 시설 개선 등 학교의 수요 조사, 현장 조사, 각 교육지원청 심의, 시교육청 심의 등의 과정을 거쳐 올해 사업 예산을 배분했다.
그런데 지난해 12월 시의회가 시교육청 예산을 심의하는 과정에서 이 예산이 대폭 증가했다. 시교육청이 2055억 원으로 제출한 예산안은 1차 관문인 시의회 교육위원회를 거치면서 2159억 원으로 늘었고, 2차 관문인 시의회 예산결산위원회를 통과할 때는 2630억 원으로 껑충 뛰었다.
이는 시의회가 “지방교육재정은 파탄 지경”이라며 서울의 누리과정 예산을 0원으로 만든 것과는 정반대 행보라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해 시교육청은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은 편성하지 않고 유치원 예산 2521억 원을 편성해 제출했지만 시의회가 전액 삭감했다.
학교 시설 증개축과 교육환경 개선을 위한 사업 예산은 대표적인 지역구 챙기기용 예산으로 꼽힌다. 수요는 많지만 예산이 없어 교육청으로부터 지원받지 못하다가 시의원이 나서서 해결한 것으로 알려지면 다음 선거에서 득표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한 교육계 인사는 “학교 시설 예산을 확보하는 것은 지역구를 관리하는 데 최고의 효과를 발휘한다”며 “이 때문에 시의회 교육위원회에 오려는 의원이 많다”고 말했다.
지역구 예산 챙기기는 여야를 가리지 않고 광범위하게 이뤄졌다. 2016년 서울시교육청의 시설사업비 중 학교 시설 증개축과 교육환경 개선 예산 증액 내역을 분석한 결과 전체 105명의 서울시의원 중 73명을 차지하는 더불어민주당 소속 의원의 지역구에 총 494억 원의 사업비가 증액됐고, 29명을 차지하는 새누리당 의원 지역구에 187억 원이 늘었다. 심의 과정에서 일부 사업 예산은 전부 또는 일부가 감액됐다.
시의회는 예산을 편성할 수 있는 권한이 없기 때문에 시교육청이 동의해야 ‘쪽지 예산’으로 지역구 챙기기가 가능한 구조다. 하지만 시교육청은 시의원들의 요구를 무시하기 어렵다고 하소연했다. 시교육청 관계자는 “원칙을 고수하다 보면 예산 심의 자체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을 수도 있고, 다른 부분의 예산에서 불이익이 생길 우려가 있어 시의원들의 요구를 대체로 수용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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