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오후 서울에서 차로 1시간 반을 달려 도착한 강원 홍천군 북방면 소매곡리. 이 산골마을에 들어서면 해바라기 모양의 태양광발전 시스템을 갖춘 가로등들이 유독 눈에 띈다. 소매곡리는 환경부, 강원도, 홍천군, SK E&S가 참여한 정부의 첫 친환경 에너지 타운이다. 겨울 난방비만 가구당 월 40만 원이 넘었던 소매곡리는 이제 자체적으로 전기를 생산하는 ‘에너지 자립마을’이 됐다.
악취를 풍기던 가축분뇨 처리장의 바이오가스는 도시가스로 전환돼 주민들에게 공급되고 있다. 태양광발전소와 하수 방류시설을 활용한 소수력 발전은 이 마을 65가구가 모두 쓰고도 남는 넉넉한 전력을 생산해낸다. 마을 주민 이승관 씨(78·여)는 “추운 겨울에도 가스가 떨어질 걱정을 하지 않아도 돼 정말 다행”이라고 말했다.
온실가스를 줄이기 위한 ‘파리 협정’이 탄생하면서 세계가 새로운 에너지 혁명을 위한 질주를 시작했다. 점점 뜨거워지는 지구의 온도 상승폭을 2030년까지 산업화 이전 대비 1.5도까지 낮추는 게 주어진 지구촌의 미션이다. 그 추진 과정에서 1경4000조 원대의 에너지 시장이 새로 열린다는 전망 속에 국내외 정부는 물론이고 산업계까지 들썩거릴 조짐을 보인다. 전 세계 에너지 구조 자체를 바꾸는 거대한 변화의 조류가 밀려오는 것이다.
미래학자와 전문가들이 주목하는 에너지원은 ‘태양’이다. 관련 업체들은 연구개발(R&D) 투자 등을 통해 기술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풍력과 지열, 조수 간만의 차를 이용한 발전 등 신재생에너지의 개발은 아직 미미하지만 성장의 싹을 틔워 나가고 있다. 그 치열한 현장을 들여다본다.
▼ ‘청정 발전’ 태양이 뜨고… ‘탄소 제로’ 바람이 분다 ▼
‘시커먼 검댕이 나오는 석탄과 석유는 사라지고, 배기가스 대신에 물만 나오는 자동차를 굴리면서 모든 에너지는 태양과 바람과 파도에서 얻게 되는 맑고 깨끗한 자연 친화적 세상.’
청정에너지의 사용이 일반화되는 미래 환경을 이야기할 때 가장 쉽게 떠오르는 이미지들이다. 그러면서도 실상은 80% 이상을 검은 에너지에 의존하고 있는 ‘석유 중독 사회’에서 멀게만 느껴지던 판타지였다.
그러나 2021년 신기후체제의 시작을 앞두고 이런 상상 속의 비전은 점차 눈앞의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이른바 ‘에너지 혁명’을 위한 구체적인 청사진이 속속 제시되고 있는 것이다.
태양으로 먹고사는 사람들
주한 영국대사관의 김지석 기후변화에너지 담당관은 주변에서 ‘태양광 전도사’로 불린다. 각종 강연과 세미나 활동은 물론이고 사람을 만날 때마다 태양광의 엄청난 가치를 설파하고 다니기 때문이다.
그는 충남 공주시의 고향집 근처에 2000m² 넓이의 땅을 사서 직접 태양광발전 패널을 설치했다. 딸의 이름을 따서 ‘수현태양광발전소’라는 이름을 짓고 한국전력과 사업자 계약도 맺었다. 앞서 만든 ‘공주발전소’에 이어 두 번째. 이 두 개의 작은 발전소에서 생산한 전기를 한전에 공급해 매달 250만 원 안팎의 수익을 얻는다. 김 담당관은 “앞으로 40년은 그냥 앉아서 돈 버는 셈”이라며 “노후 준비는 이것으로 끝났다”고 큰소리를 쳤다.
“꼭 돈 때문은 아닙니다. 기후변화 같은 재앙을 막는 데 태양이 해결책이라고 봐요. 저 같은 개인들도 얼마든지 기여할 수 있습니다. 제가 줄이는 온실가스 양이 연간 60t쯤 됩니다.”
그는 올해 초부터 페이스북에 ‘발전소 리포트’를 올리고 있다. 투자금 2억9000만 원(땅값과 발전설비, 전기 수송 시스템 구축 비용 등)의 사용 명세와 패널 설치 과정, 매달 전기요금 정산서 등의 정보를 세세하게 공개하고 있다.
김 담당관 같은 개인 에너지 투자는 앞으로 크게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는 지난해 12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1)를 앞두고 내놓은 ‘2030 에너지 신산업 확산 전략’에서 개인들이 전력을 생산해 사용하고 남으면 팔 수도 있는 ‘에너지(E)-프로슈머’ 시장의 활성화를 공약했다. △저탄소 에너지 발전 △전기자동차 확대 △친환경 공정과 함께 4대 주요 신사업 중 하나다. 이를 통해 2035년까지 신재생(renewable)에너지의 비율을 전체 전력량의 13%까지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신재생에너지는 계속 사용해도 고갈되지 않고 무한정 쓸 수 있는 에너지 원천을 뜻한다. 태양광과 지열, 풍력, 조력, 수력, 바이오 에너지 등 6가지가 꼽힌다. 이런 에너지원은 폐기물도 발생하지 않는다. 환경부 김법정 기후대기정책과장은 “신재생에너지는 탈(脫)탄소의 핵심”이라며 “이게 제대로 진행되면 탄소제로도시나 친환경에너지타운 확대, 전기차 100만 대 보급 같은 다른 환경 프로젝트들의 속도가 확 올라갈 수 있다”고 말했다. 에너지 ‘게임의 룰’이 바뀐다
전문가들은 여러 종류의 신재생에너지 중에서도 특히 태양과 바람의 2가지 에너지를 주목하고 있다. 기업들의 기술 투자도 이 분야로 몰리는 추세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국내에서 태양광과 풍력산업은 전체 신재생에너지 투자액의 91%, 매출액의 85%를 차지하는 양대 핵심 축이다.
태양광의 매력은 일단 어마어마한 에너지의 양이다. 지구에 도달하는 태양에너지를 전부 변환하면 세계가 1년간 사용하는 에너지를 단 1시간 만에 생산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계산. 지구 전체 표면의 0.1%만 태양전지로 덮어도 전 세계 사람들에게 필요한 모든 에너지 공급이 가능하다는 분석도 나와 있다. 투자의 귀재로 불리는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이 2012년 ‘토파즈’라는 이름의 태양광발전소를 24억 달러에 인수한 것은 태양에너지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례로 거론된다. 일본의 소프트뱅크는 지난해 6월 인도의 태양광발전 설비 및 에너지 관련 정보기술(IT) 분야에 100억 달러(약 12조 원) 규모의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자동차는 물론이고 비행기 같은 대형 운송수단을 직접 태양광으로 작동시키려는 시도도 끊이지 않는다. 스위스가 개발한 태양광 비행기 ‘솔러임펄스(Solar Impulse)-2’는 지난해 7월 닷새를 쉬지 않고 날아 태평양을 건너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풍력의 발전 속도 역시 폭발적이다. 세계풍력에너지협회는 풍력발전이 매년 20%씩 성장할 것으로 보고 있다. 발전 단가도 MWh당 100달러로, 2년 만에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유럽연합(EU)의 경우 2030년까지 풍력발전 설비에 339억 유로(약 44조7600억 원)를 투자할 계획이다. 연간 19.5GW(기가와트)를 풍력으로 생산할 계획이다.
글로벌 에너지 전문가인 토니 세바 미 스탠퍼드대 겸임교수는 “석탄과 석유의 탄소 배출량을 줄이는 것 정도로는 온실가스 감축이라는 글로벌 목표 달성이 불가능하다”며 “거대한 패러다임의 전환을 읽고 신재생에너지의 개발에 더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바 겸임교수는 그의 저서 ‘에너지 혁명 2030’에서 △2030년 모든 새로운 에너지는 태양과 바람으로 제공되고 △휘발유는 더이상 쓰이지 않으며 △신차는 100% 전기차인 시대가 올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그는 “에너지산업의 ‘코닥’ 신세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필름업체 코닥이 인화 시간을 줄이고 해상도를 높이며 발버둥쳤어도 결국 디지털카메라의 기술 흐름을 놓쳐 사멸 직전까지 갔던 것을 기억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왜 고작 1.4%?
실제로 과거 에너지 산업을 좌지우지했던 석탄 기업들의 쇠락은 눈에 띄게 빨라지고 있다. 미국 내 석탄 생산 2위를 달리던 ‘아크콜(Arch Coal)’의 경우 10년 전만 해도 주당 430달러에 달했던 주가가 지난해 말 1달러까지 내려앉았다. 이 회사는 최근 결국 파산보호 신청을 냈다. 1위 업체인 ‘피보디(Peabody) 에너지’의 주가는 같은 기간 750달러에서 10달러까지 무너져 내렸다.
하지만 이처럼 몰락하는 ‘검은 에너지’의 빈자리를 신재생에너지가 당장 메워줄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회의적 시각이 많다. 신재생에너지의 투자 대비 효율이 낮은 것이 문제로 꼽힌다. 태양광의 경우 밤에는 전력 생산이 불가능하고 비가 오거나 구름이 많이 끼는 날에도 발전량이 크게 떨어진다. 한낮에 생산한 에너지를 모아놓을 저장시설(ESS)의 개발, 필요할 때 이를 효율적으로 꺼내 쓰도록 하는 ‘스마트 그리드 시스템’의 구축 등도 아직은 기대 수준에 크게 못 미친다.
다른 에너지원에 비해 크게 높은 발전 단가도 부담이다. 태양광 자체는 공짜지만 저장시설과 송전선 연결 등에 들어가는 비용을 감안하면 발전 단가는 kWh당 250원대까지 올라간다. 10년 전(600원대)보다는 낮아졌지만 여전히 석탄(60.3원)보다 3배 이상 높다. 더구나 한국은 시장이 작아 거액의 투자가 요구되는 기술개발에 선뜻 나서려는 기업이 많지 않다. 잇단 ‘장밋빛 전망’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신재생에너지의 비율이 고작 1.4%에 머물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송영일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KEI) 기후변화적응센터장은 “기업들의 입장에서는 값싼 에너지원을 놔둔 채 이런 고가의 에너지에 투자할 이유를 찾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새로운 미래 에너지에 투자하고 개발할 수 있게 만드는 동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신재생에너지 업체들이 안정적인 운영과 투자가 가능한 단계에 도달할 때까지 정부가 세금 혜택과 투자 유도 정책을 통해 적극적으로 지원할 필요가 있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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