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 정부가 2016년 예산안을 내놓은 이후 시도교육감협의회는 똘똘 뭉쳤다. 누리과정 예산을 시도교육청의 의무지출경비로 지정하는 것에 반대하기 위해서였다. 교육감협의회는 10월부터 평균 한 달에 세 번가량 누리과정과 관련한 긴급 총회, 반대 결의문 채택, 기자회견 등을 이어갔다.
반면 지난해 12월부터 잇달아 충격적인 아동학대 참사가 벌어졌지만 교육감들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두 피해 아동 모두 의무교육인 초등학교에서 3년 넘게 결석했지만 교육당국은 손을 놓고 있었다.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은 미취학과 장기결석에 대한 최종 책임을 교육감에게 두고 있다. 초중학생이 정당한 사유 없이 7일 이상 결석하면 학교장, 읍면동장, 교육장을 거쳐 최종적으로 교육감에게 보고해야 한다. 시행령 27조는 ‘교육감은 의무교육에 대한 취학 독려 상황을 수시로 확인·점검하고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장기결석 끝에 끔찍한 사건이 벌어졌지만 교육감협의회는 이와 관련해 입장을 내놓거나 대책을 논의하지 않았다. 심지어 사건 발생 지역인 경기도교육감과 인천시교육감조차 사과 한마디 하지 않았다. 이 사건이 불거지기 이전에도 교육감들이 장기결석 현황을 수시로 확인하고 필요한 조치를 취한 전례는 없다. 교육감의 중요한 책무 중 하나인 취학, 결석 확인 의무를 다하지 않은 것이다.
앞서 18일 이준식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과 시도교육감협의회 임원진 간의 회동에서도 교육감들은 장기결석과 아동학대 문제에 무관심한 태도를 보였다. 이날 회견의 첫 번째 안건은 장기결석, 두 번째 안건은 누리과정이었다. 이 장관이 장기결석 안건을 꺼내자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이건 실무진들끼리 협의해서 하는 거죠”라고 말했다. 그러자 교육감협의회장인 장휘국 광주시교육감을 비롯한 나머지 교육감들 역시 장기결석 문제는 논의하지 않고 누리과정에 대한 정부 성토만 하다가 자리를 끝냈다.
시도교육감협의회는 누리과정의 예산을 책임질 수 없는 이유로 교육자치와 자율성을 강조했다. 누리과정 예산을 시도교육청의 의무로 지정하는 것은 교육감들의 자율권을 침해한다는 주장이다. 이를 두고 교육계에서는 교육감들이 정작 해야 할 의무는 저버리고 권리 찾기에만 급급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재정 경기도교육감이 19일 누리과정에 대한 성토 끝에 “초등돌봄사업도 교육청이 부담할 법적 근거가 없다”고 말한 것에 대해서도 비판 여론이 일고 있다. 저출산 대책 중 하나인 초등돌봄교실에 대해 맞벌이 학부모의 만족도가 높은 상황에서 교육감이 법적 위임 관계만 따지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관계자는 “직선제 이후 교육감들이 초중등 교육의 자율성을 강조하지만 진정한 자율권을 가지려면 책무성부터 다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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