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경남/동서남북]‘갑질 논란’ 향토기업이 사는 길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월 21일 03시 00분


강정훈·부산경남취재본부
강정훈·부산경남취재본부
“몽고 김 회장이 무학 최 회장에게만은 그나마 예의를 갖춘답니다.”

몽고식품 김만식 전 명예회장(77)의 운전기사 폭행사건이 터진 직후 경남 마산에 연고가 있는 한 기자는 이런 얘기를 전했다. 누구에게도 잘 숙이지 않는 김 전 명예회장이 무학 최위승 명예회장(83) 앞에서는 저자세라는 농담이다. 심지어 “최 명예회장이 참석하는 행사는 가급적 피한다”는 우스갯소리도 곁들였다. 최 명예회장이 연장자이고 사세에서도 무학에 밀리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간장이 주력인 몽고식품 연간 매출은 450억 원대. 소주시장의 강자로 떠오른 무학은 2014년 매출 3000억 원, 영업이익 800억 원이었다.

두 사람의 스타일도 어금버금하지만 회사 역시 공통점이 많다. 일제강점기 마산에서 일본인 회사로 출발한 점이 같다. 간장이나 술이나 ‘물’이 원천이다. 그래서 광고엔 ‘물 좋은 마산의…’라는 수식어가 빠지지 않았다. 대물림 경영도 닮았다.

이런 향토기업이 동시에 ‘갑질 논란’으로 엄동설한을 맞고 있다. 김 전 명예회장에 이어 최 명예회장 차남인 최재호 회장(57)도 수행기사 폭행 시비에 휘말렸다. 최 회장은 “폭언, 폭행을 당했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검찰 조사에서 밝혀질 것”이라며 강경 대응할 태세다.

문제는 여론이다. 몽고식품은 불매운동 여파로 매출이 과거의 절반 가까이 감소했다. 반전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회사 구성원들 사이에서 “이러다가 큰일 나는 것 아니냐”는 걱정이 가득하다.

무학은 주가가 계속 하락세다. 매일 6∼8%포인트씩 빠진다. 회사 관계자는 “이미지 타격이 크고 매출도 줄었다”고 말했다. 지역 상공계에서는 “두 회사의 문제는 오래전부터 잠재됐던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소비자로부터 받은 사랑에 걸맞은 사회적 책임과 기업 전통에 어울리는 품격 관리를 소홀히 했다는 지적이다.

두 명예회장은 나이와 경력에서 ‘대우’를 받을 만하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이들을 ‘어른’ ‘원로’로 부르는 사람은 별로 없다. 돈 많은 지역 유지 정도로 칠 뿐이다.

2세 경영인인 최 회장은 경남메세나협회장을 맡는 등 대외활동도 활발하다. 하지만 그 역시 평가는 박한 편이다. 억울할지 모르지만 그의 ‘조신(操身)하지 못한 처신’은 시중의 안줏거리가 된 지 오래다.

창업보다는 수성이 어렵다고들 한다. 이번 폭로의 배경이나 실체적 진실이 무엇이든 두 회사의 시련은 당분간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창사 이래 최대 위기를 극복하고 꽃피는 춘삼월을 맞으려면 무엇보다 ‘오너 일가’의 환골탈태가 필수다. 말로만 ‘섬김과 봉사’를 외칠 것이 아니라 진정 자세를 낮추고 이웃을 공경하며 모두를 살피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새로 태어나지 않으면 100년 전통도 한순간 물거품이 된다. 적은 언제나 내부에 있다.

강정훈·부산경남취재본부 manm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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