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남시 ‘청년배당’ 하루만에 ‘깡’ 신세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월 22일 03시 00분


“12만5000원짜리 상품권 6만원에 팝니다”… 중고거래 사이트 매물 잇따라
청년들 “사용할 곳 많지 않다”… 받자마자 헐값으로 현금화 나서

경기 성남시가 20일부터 청년들에게 제공하기 시작한 ‘성남사랑상품권’이 온라인 중고장터 ‘매물’로 등장하고 있다. 성남시는 서둘러 대책 마련에 나섰지만 현금화를 막을 마땅한 방안이 없어 고심하고 있다.

21일 오전부터 ‘중고나라’ 등 중고물품 거래 전용 온라인 카페와 사이트 등에는 성남사랑상품권을 할인해서 판매하겠다는 글이 잇달아 올라왔다(사진). ‘가격 6만 원, 성남사랑상품권 팝니다. 카톡으로 문의 주세요’ 등 정가(12만5000원)보다 싼 가격을 제시하는 글이다. 반대로 ‘상품권을 30% 정도 싸게 사고 싶다’며 구매를 희망하는 글도 상당수 게시됐다.

아이디 ‘우지**’로 활동하는 김모 씨(24)는 본보 기자와의 통화에서 “나도 어제 신청해서 이 상품권을 받았다”며 “갈수록 중고시장에서 이 상품권을 팔려는 사람이 많아질 것 같아 서둘러 판매했다”고 말했다. 김 씨는 “상품권 용도가 제한적”이라며 “청년들이 많이 찾는 곳에서는 정작 쓸 수 없는 경우가 많다”고 덧붙였다.

상품권 거래 글이 이어지자 성남시는 이날 오전 11시경 비서실 명의로 ‘상품권 거래가 이뤄지지 않았으면 한다. 이 복지정책의 의미가 퇴색되지 않도록 도와 달라’는 글을 카페 게시판에 올렸다. 성남시 관계자는 또 이날 오후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 위치한 중고나라 카페 사무실을 찾아가 담당자에게 “성남시 정책에 해를 끼칠 수 있으니 성남사랑상품권 판매 글들을 삭제해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이 상품권은 성남시의 ‘청년배당’ 정책에 따라 3년 이상 거주한 만 24세 청년에게 제공된다. 청년배당은 공공산후조리 무상교복과 함께 성남시의 3대 무상복지 정책 중 하나다. 보건복지부가 협의 없는 강행에 반대 의견을 냈고 경기도가 관련 예산을 의결한 성남시의회를 대법원에 제소하는 등 법적 갈등을 빚고 있다.

앞서 성남시는 청년들의 신청을 받아 20일 50개 주민센터에서 5223명에게 상품권을 지급했다. 이번 상품권은 1분기(1∼3월) 몫이다. 1인당 연간 50만 원을 받게 된다. 취업 여부와 소득, 재산 수준과 상관없이 제공한다. 이렇게 지급된 상품권은 지역의 전통시장, 소매점, 개인 슈퍼 등에서 쓸 수 있다.

그러나 현금화 사례가 나타나는 등 취지에 맞지 않는 부작용이 시작 직후부터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김남준 성남시 대변인은 “사용처를 늘려 유용성을 높이고 2분기부터는 현금화를 막기 위해 전자카드로 지급할 계획”이라며 “전자카드에 충전 기능을 도입해 분기마다 주민센터를 방문할 필요가 없도록 하고, 신용카드처럼 카드 뒷면에 서명한 사람 외에는 양도 대여가 불가능하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전주영 기자 aimhigh@donga.com
#성남시#청년배당#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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