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기획]“로또는 고통없는 세금”… 그래도 국내 판매액 年 3조원 넘어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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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권 구입, 손해일까 이득일까… ‘로또 경제학’

인생역전의 꿈은 나흘 만에 ‘일장춘몽’으로 끝났다. 직장인 장모 씨(30·여)는 지난주 미국에 사는 친구에게 미국판 로또인 ‘파워볼’을 대신 구입해 줄 것을 부탁했다. 당첨되면 당첨금의 10%를 준다는 후한 조건도 내걸었다. 추첨 전날 장 씨는 “복권에 당첨되면 초호화 세계일주를 하자”고 남편과 행복한 약속도 했다. 하지만 결과는 예상대로 ‘꽝’이었다. 장 씨는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즐거웠다”며 “이제 한국 로또에 희망을 걸어보겠다”고 말했다.

세계 복권 사상 최고 당첨금인 16억 달러(약 1조9000억 원)가 걸린 파워볼의 1등 당첨자가 14일 결정됐다. 당첨자는 모두 3명. 이들이 당첨금을 한꺼번에 받는다면 세금을 제한 실수령액 약 6800억 원을 2260억 원씩 나눠 갖게 된다.

평범한 사람이 하루아침에 수천억 원을 가진 벼락부자가 됐다는 소식에 한국도 복권 열풍에 휩싸였다. 22일 나눔로또에 따르면 올해 진행된 3번의 로또 추첨에서 회차별 평균 판매액은 692억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평균 판매액(635억 원)에 비해 9.0% 늘었다. 특히 미국 파워볼 역대 최고액 당첨자가 나온 지난주와 겹치는 3주차(685회) 판매액은 691억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1.5% 급증했다.

벼락 맞기보다 힘든 로또 당첨

올해뿐만 아니라 국내에서 로또 판매액은 꾸준한 증가세다. 2008년 2조2784억 원에서 2014년 3조489억 원으로 6년 사이에 34%가 늘었다. 기획재정부 복권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로또 판매액은 3조2571억 원으로 2000억 원 이상 증가한 것으로 추정된다. 복권위 관계자는 “2014년 세월호 사고 여파로 위축됐던 로또 판매가 살아나고 지난해 신규 판매점 428곳이 새로 문을 열었다”며 “올해 판매액은 더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로또에 당첨될 확률은 말 그대로 하늘의 별따기다. 최근 파워볼의 당첨금이 엄청나게 불어난 것도 1등 당첨자가 나오지 않아 상금이 이월됐기 때문이다. 파워볼은 1∼69 가운데 5개와 1∼26 가운데 1개 등 총 6개의 숫자를 맞히면 1등 당첨자가 된다. 이를 수학적으로 계산하면 2억9220만1338분의 1 확률이다. 일반적으로 한 해 동안 벼락 맞을 확률을 50만분의 1이라고 본다. 파워볼 1등에 당첨되는 건 이런 확률의 벼락을 584차례나 맞는다는 얘기다. 사실상 일어나기 어려운 일이라는 뜻이다. 한국의 로또(814만분의 1)나 연금복권(315만분의 1)에 당첨되는 일도 벼락 맞기보다 어렵다.

국민 10명 중 7명 “복권이 있어 좋다”


그렇다면 복권이 투자하기에 적합한 수단일까. 이 역시 복권 당첨금의 기댓값을 구해보면 간단하다. 기댓값은 수학용어로 어떤 사건이 일어날 때 얻어지는 양과 그 사건이 일어날 확률을 곱해 얻어지는 가능성의 값이다. 로또 당첨금 기댓값은 1000원으로 로또 한 장을 샀을 때 기대할 수 있는 금액이다. 기댓값이 구입 가격(1000원)보다 높아야 살 만한 가치가 있다.

나눔로또가 제공하는 로또 1∼685회 통계에 따르면 평균 1등 당첨금액은 약 20억 원이다. 이를 토대로 등위별 당첨금을 20억 원(1등), 6000만 원(2등), 150만 원(3등), 5만 원(4등), 5000원(5등)으로 가정할 때 각각의 당첨금에 해당 등위별 당첨확률을 곱한 뒤 모두 더하면 기댓값을 구할 수 있다.

그 결과 1000원을 로또에 투자한 기댓값은 513.696원이다. 물론 세금을 떼면 기댓값은 더 낮아진다.

그럼에도 복권에 관한 대다수의 인식은 긍정적이다. 복권위가 지난해 ‘2015년도 복권에 대한 인식 조사’를 한 결과 ‘복권이 있어 좋다’는 인식을 가진 국민이 68.1%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지난해(62.9%)보다 5.2%포인트 높은 수치다.

엘런 랭어 미 하버드대 심리학과 교수는 사람들이 로또를 사는 이유를 알아보기 위해 한 가지 실험을 했다. 사람들을 A, B그룹으로 나눠 각각 1달러를 주고 A그룹은 직접 선택한 번호의 로또를, B그룹은 자동 선택된 로또를 사게 했다. 그리고 잠시 후 로또를 얼마에 되팔겠느냐고 물었다. B그룹은 평균 1달러 90센트를 달라고 했지만 A그룹은 평균 8달러 90센트를 원했다. 자신이 직접 로또 숫자를 선택했다는 것 자체에 큰 의미를 부여한 것이다. 랭어 교수는 로또 구입에 있어서도 ‘통제의 환상(Illusion of control·현실적으로 권한이 없는 뭔가에 대해 통제하거나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믿는 경향)’이 작용한다고 봤다.

“있지도 않은 희망에 매기는 세금”

복권은 주로 국가의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시행됐다. 중국 진(秦)나라는 ‘키노(Keno)’라는 복권을 발행해 만리장성을 건설하는 등 국방비를 조달했다. 미국의 3대 대통령인 토머스 제퍼슨은 복권을 “강제성 없이 공공재원을 조성할 수 있는 고통 없는 세금이자 이상적인 재정 수단”이라고 표현했다.

미국은 파워볼 판매금액의 40%를 세금으로 뗀다. 이 때문에 이번 파워볼 열풍의 최대 수혜자는 미국 정부라는 말도 나온다. ‘미국 도박 영향에 관한 연구위원회’ 조사에 따르면 고졸 이하 학력자는 대졸자보다 4배 많이, 흑인들은 백인보다 5배 더 많이 복권을 사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가 헛된 희망을 부추겨 서민들의 호주머니를 털고 있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는 이유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로또 당첨금을 주는 NH농협은행의 한 관계자는 “찾아오는 당첨자들의 옷차림을 보면 로또는 정말 서민들이 많이 산다는 생각이 든다”며 “경제적으로 힘든 분들이 많아 당첨자들이 당첨금을 잘 관리할 수 있도록 사후 관리에도 힘쓰고 있다”고 전했다. 복권위에 따르면 지난해 복권을 구입한 국민의 68.8%가 월평균 가구소득이 457만 원 이하(소득 1∼3분위)인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 정부의 복권사업 순수익률은 40% 수준이다. 정부는 복권기금을 조성해 취약계층, 서민 주거안정, 문화예술, 보훈복지, 재해재난 등 5대 분야에 지원하고 있다.

세종=박민우 기자 minwoo@donga.com
#복권#로또#파워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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