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지 않은 시절, 마을마다 ‘동네 목수’로 불리던 지역 건축가들이 있었다. 지역에 살면서 이웃들의 형편에 맞게 집을 지어주거나 뚝딱 고쳐주는 귀한 사람들이었다. 딱히 건축가라고 할 것도 없고 ‘손끝이 야물고 눈썰미가 좋은’ 농부이자 목수였다. 농촌이 무너지면서 언제부턴가 이들도 사라졌다. 농촌에서 개집 하나를 지으려 해도 시장에 가서 사거나 도시의 목수에게 부탁해야 하는 세상이다.
전북 순창군 동계면에 거주하는 김석균 씨(52)는 동네 목수를 양성하는 ‘마을건축학교’ 교장이자 흙과 볏집 등 자연 재료를 이용해 집을 짓는 ‘흙건축연구소 살림’ 운영자다. 그는 마을마다 동네 목수가 한 명씩 살고 농촌 사람들이 흙으로 만든 집에서 이웃과 어우러져 따뜻하게 사는 세상을 꿈꾼다.
○ 따뜻한 세상을 위한 건축
김 씨는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전북대 철학과)했지만 학창 시절에도 연극과 농악에 더 열심이었다. 전주창작극회에서 배우로 활동했고 임실 필봉농악단에서 대포수를 맡을 만큼 10년 이상 농악에 빠져 살았다. 1991년 강원 원주에서 열린 자연학교에서 생태철학자 고 장일순 선생의 강연을 듣고 생태건축에 눈을 떴다. ‘의식주를 내 손으로’ 해결하는 것이 건강한 삶이라는 생각에 천연염색과 전통차 만들기에 몰두했다.
1998년 서울의 병원 원무과 직원 생활을 접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중장비를 운영하던 아버지 일을 도우면서 전통건축을 독학으로 익혀 갔다. 당시만 해도 한옥장인 팀에 끼어들기가 쉽지 않았다. 전주한옥마을 철거 현장에서 일하면서 한옥의 구조를 익혔다. 내친김에 2001년부터 2년간 전남 장흥의 이남채 한옥대목장 아래 들어가 한옥 건축을 배우고 목포대 건축학과 대학원에서 흙건축을 공부하면서 이론적 체계를 세워 나갔다. 2004년에는 호주에서 열린 스트로베일(볏짚공법) 워크숍에 참가해 다양한 자연주의 건축의 경향을 익혔다.
마을건축학교를 통해 동네 목수를 기르겠다는 그의 꿈은 2013년에야 구체화됐다. 10여 년 동안 전북 무주 장수 진안, 충남 공주 등지에 살면서 폐교를 찾았지만 뜻을 이루지 못하다 2013년 순창의 빈 농협 창고를 매입하면서 정착하게 됐다.
○동네 목수의 귀환
김 대표는 지난 3년 동안 마을건축학교에서 21회에 걸쳐 200여 명의 동네 목수를 양성했다. 귀농 예정자나 젊은 귀농자를 대상으로 3일에서 9일 동안 자연 재료로 집 짓기나 아궁이 개량, 단열을 가르쳤다. 집을 새로 짓기보다는 기존 집을 고치는 방향으로 유도한다. 그는 집과 공간 하나에도 수많은 기억들이 중첩돼 있기 때문에 버려진 집에 새로운 쓰임새와 생명력을 불어넣는 일이 의미가 크다고 생각한다.
과정을 마친 동네 목수들은 실습을 겸한 재능기부를 해야 한다. 이른바 ‘시골집 따숩게 만들기’다. 노인들이 사용하는 ‘방 한 칸’만 수리하는 것이다. 찬 바람이 들어오지 않게 단열을 위주로 한다. 물론 흙이나 볏집보드 등 자연 재료를 사용한 ‘생태단열’이다. 보통은 단열할 때 벽에 스티로폼을 붙이지만 생태단열은 볏짚을 압축한 단열재를 벽에 붙이고 흙으로 미장하면 끝이다. 자연 재료는 실내 공기를 쾌적하게 하고 온도와 습도를 자연스럽게 조절한다. 며칠만 배우고 한두 번 해보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기술이다. 김 대표는 이를 ‘적정기술’이자 ‘사람의 체온을 가진 기술’이라고 말한다. 교육생들은 지난해 순창군에 재능 나눔을 제안해 경로당, 홀몸노인 집 빈집 20채를 생태단열로 수리했다. 재능 나눔 방식도 일방적 기부나 수혜가 아니라 시골집을 따뜻하게 고쳐주면서 귀농인과 지역 주민을 자연스럽게 연결하고 안정적인 정착을 돕는 것이다.
그는 올해 순창군의 지원을 받아 홀몸노인 집 50채를 수리해줄 계획이다. 또 농림수산식품부의 농촌 교육프로그램 지원 공모에 뽑혀 작은 집 짓기 교육도 확대할 계획이다.
그의 흙집은 흙벽돌을 쌓는 방식이 아니라 나무틀에 흙을 채워놓고 다지는 흙다짐 방식(담틀집)으로 짓는다.
대학에서 건축을 전공한 그의 아내 이민선 씨(42)는 흙건축연구소 살림 대표를 맡으면서 건축 설계를 담당한다. 이 회사는 흙 미장재를 생산해 도시의 호텔이나 카페 인테리어를 시공하기도 한다. 이 회사는 스트로베일 공법으로 지은 경남 김해의 어린이집과 순천의 흙집 등 지금까지 전국에 20여 채의 집을 설계 시공했다.
○청년 귀농자를 위한 셰어하우스
김 대표는 최근 집에서 멀지 않은 동계면 주월리 강가에 빈 농협 창고를 사서 청년 귀농자를 위한 셰어 하우스를 꾸몄다. 가족이 없는 젊은층은 귀농을 해도 막상 살 집을 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35세 미만 싱글 귀농자 5명가량을 받을 생각이다. 이들의 농촌 정착을 돕기 위해 선배 귀농자들로 구성된 ‘동네형님 멘토단’도 꾸렸다. 무엇보다 같이 놀기 위해서다.
그는 젊은 귀농자들의 모임인 사단법인 ‘10년 후 순창’의 열성당원이기도 하다. 귀농자들이 모여 각자의 재능을 서로 나누고 공동체 복원과 마을 만들기도 함께 고민한다. 고추장으로 유명한 순창에 사는 만큼 장류와 누룩 등 발효식품 공부와 토종종자 육성도 빠질 수 없다. 직접 두부와 술을 만들어 함께 나누어 먹는 것도 큰 즐거움이다.
그는 지난해 마을 뒤 작은 땅을 구입했다. 이곳에 생태정원과 생태놀이터를 꾸며 도시의 아이들이 찾아와 흙놀이를 하고 어른들은 쉬면서 흙건축을 체험하는 마을관광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서다.
“농촌생활을 있는 그대로 즐겨라”
■ 김석균 대표가 말하는 귀농 팁
농촌에 들어온 지 10년째인 김석균 대표가 후배 귀농자에게 전하는 귀농, 귀촌 팁(Tip).
첫째, 어른들 보면 무조건 인사하라.
“어른들에게는 예절 바른 것이 제일이다. 인사 잘해서 손해 보는 법 절대 없다.”
둘째, 차 타고 가다 동네 노인들 보면 무조건 태워 드려라.
“반드시 보답이 뒤따른다. 이른 아침 밭에서 딴 호박과 고추가 대문 앞에 놓여 있을 것이다.” 그는 농촌에 살면서 직접 김치를 담가 먹은 기억이 별로 없다. 동네 할머니들이 계속 갖다 주시기 때문이다.
셋째, 이장님이 동네 권력의 핵심임을 명심하라.
“모든 정보는 이장에게서 나온다. 동네 평판의 생산자나 유통자도 이장일 가능성이 높다.”
이 밖에 지역경제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내가 머무는 곳을 따뜻하게 만들라고 말한다. 동네 목수다운 조언이다.
그가 무엇보다 강조하는 농촌생활 팁은 “귀농을 너무 무겁게 생각하지 말고 그냥 시골 생활을 즐겨라”다. 그의 생활 모토 역시 “적게 일하고 많이 놀자”다. 생활에 필요한 기본적인 벌이는 필요하지만 농촌에서 큰돈을 벌기가 생각만큼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공동체 속에서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회복하고 적게 쓰면서 생태적으로 살려고 노력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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