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0명 밤 새우는데 구호세트 503개뿐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월 26일 03시 00분


[제주공항 운항 재개]
정부, 인구비례로 비축량 결정… 관광객-섬 특성 고려 안해 ‘구멍’

수천 명을 ‘노숙인’으로 만든 이번 제주국제공항 마비 사태는 한파와 폭설 강풍 등 악천후가 한꺼번에 닥친 것이 근본 원인이다. 그러나 정부와 항공사의 안일한 대응이 혼란을 가중시켰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23일 항공사의 결항 통보를 받지 못한 승객들이 대거 공항으로 몰렸지만 공항 내 체류객을 위한 정부의 매뉴얼은 없었다. 구호품도 이런 비상 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비축해 놓아 지급량이 턱없이 모자랐다.

25일 동아일보 취재 결과 제주도가 확보해 놓고 있는 응급구호세트는 503개에 불과했다. 23일 1000여 명, 24일 1700여 명에 이르는 체류객에게 지급하기엔 크게 부족했다. 인근 편의점이나 마트에서도 생필품을 구하지 못한 체류객들은 부족한 모포와 빵, 생수 등을 나누며 긴 밤을 버텨야 했다. 체류객들의 불만이 커지자 국민안전처는 이날 부랴부랴 민간 구호품 400세트를 추가 지원했다.

이번 사태는 안전처가 제주도의 지역적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구호품 비축 기준을 정한 결과다. 안전처는 재해구호법에 따라 최근 10년의 평균 인구와 인명 피해자 수, 강수량 등을 종합해 비축 기준을 정한다. 전국 시도 가운데 인구가 가장 적은 제주도(64만 명)의 응급구호세트 비축 기준은 219개에 불과했다. 제주지역 주민만 고려했을 뿐 한 해 1400만 명에 달하는 관광객을 염두에 두지 않은 것이다.

조원철 연세대 사회환경시스템공학부 명예교수는 “제주도는 거주민보다 유동인구가 많고 섬 지역의 특성상 재난 발생 시 고립될 수도 있다. 이런 점을 고려해 구호품을 현재보다 2배 이상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전처 관계자는 “이번 폭설은 이례적인 재난이라 준비가 부족했다. 기후 변화 등 여러 요소를 고려해 구호품 비축 기준을 현실성 있게 조정하겠다”고 말했다.

박성민 기자 min@donga.com
#제주공항#재난#체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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