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25일 법을 고쳐서라도 누리과정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겠다고 나선 이유는 지난해 정부가 시행령만 개정했다가 근본적 문제를 풀지 못했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은 그동안 일부 교육감과 야권이 누리과정 논란을 정치적으로 이용한다고 판단해 관련 언급을 자제해왔다. 하지만 ‘더이상 두고 볼 수는 없다’는 판단에 따라 이날 작심 발언을 쏟아낸 것으로 보인다.
○ 법 개정과 예비비로 압박
정부는 지난해 10월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 시행령을 개정해 누리과정 예산을 ‘교육감이 반드시 편성해야 할 항목’으로 바꿨다. 하지만 친전교조 성향의 교육감들은 ‘상위법인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에 위배된다’며 반발했다. 시행령 개정의 효과가 이 교육감들에게 전혀 먹혀들지 않자 박 대통령은 아예 법 개정이라는 카드를 꺼내 든 것이다.
박 대통령이 ‘약속을 지킨 교육청’에 예비비 3000억 원을 배분하겠다고 말한 것은 교육청에 대한 압박 성격이 짙다. 누리과정 예산을 12개월분 전액 편성한 교육청, 즉 정부 방침을 잘 따른 교육청에 돈을 주겠다는 얘기다. 이에 따라 예비비는 대구, 대전, 울산, 경북, 충남, 세종 교육청에 먼저 지원될 것으로 전망된다. 조만간 이 교육청들에 예비비가 풀리면 누리과정 예산 편성을 거부하고 있는 교육감들도 지역 여론의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다. 박 대통령이 이날 서울과 경기 등을 겨냥해 “받을 돈은 다 받고 정작 써야 할 돈은 쓰지 않고 있는 셈이다. 아이와 부모들을 전혀 배려하지 않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다”라고 말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다만 누리과정 문제가 꼬인 배경에는 정부의 지지부진한 유보통합(유치원-어린이집 통합) 처리 탓도 있다. 박 대통령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시절부터 유보통합을 추진했고, 이를 전제로 어린이집의 누리과정 예산까지 교육청이 책임지도록 관련 규정들을 바꿔왔다. 하지만 교육부와 보건복지부 간 견해차가 크고, 이를 총괄하는 국무총리실도 3년 넘게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
○ 반발하는 친전교조 교육감
박 대통령의 발언 직후 이준식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법 개정을 통해 확실하게 정리해 내년에는 이런 문제가 다시 불거지지 않도록 하겠다”고 대통령과 보조를 맞췄다. 새누리당 김정훈 정책위의장도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법률상 (누리과정 예산) 편성 의무가 있는 교육청의 고의적 미편성을 막기 위해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 개정안을 이번 주 발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법 개정 방식은 용도를 지정하지 않고 지방교육청에 총액으로 보내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에 누리과정 항목을 따로 만드는 방안이 유력하다. 현재 지방교육재정교부금(내국세의 20.27%) 중 96%는 보통교부금, 4%는 특별교부금으로 분리할 뿐이다. 보통교부금은 반드시 어디에 써야 한다는 목적 규정이 없다. 특별교부금은 전국적으로 시행하는 교육 관련 국가시책사업, 재난 상황, 특정 지역에 중요한 사정이 있을 때 쓸 수 있다.
교육부는 교부금의 종류를 규정한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 3조에 누리과정을 위한 ‘지정교부금’을 신설하는 방안이 실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매년 4조 원 정도 드는 누리과정 예산을 지정교부금으로 묶어 교육부가 집행하고, 남은 돈을 교육청에 보내는 방안이다. 교육감들의 예산 편성 거부를 원천 봉쇄하는 효과가 있다.
실제로 목적을 지정해 교부금을 보낸 전례도 있다. 1972∼2004년에는 교부금 가운데 의무교육기관 교원의 인건비 용도로 지정한 ‘봉급교부금’이라는 별도 항목이 있었다. 이는 2005년 이후 교부금 체계를 단순화하면서 보통교부금으로 편입됐다.
교육부는 현재 4%인 특별교부금의 비율을 높여서 이를 통해 누리과정 지원비를 집행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당정이 법 개정에 나설 경우 야당과 친전교조 성향인 교육감들의 반발이 예상된다. 특히 교육감 입장에서는 누리과정 비용만큼 자신이 쓸 예산이 줄어드는 셈이라 헌법재판소에 위헌법률심판을 청구할 가능성이 크다. 다른 쟁점 법안처럼 야당이 반대할 개연성도 상당하다. 더불어민주당 김성수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교부금의 명목을 특정해 교육청의 자율적 집행을 막겠다는 소리로 들리는데 이는 교육자치의 기본 개념을 부정하는 것”이라며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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