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직장인 황모 씨는 한파가 닥친 지난주 평일 오후 11시 서울 종로구 광화문 근처 사무실에서 5km도 안 되는 마포구의 모임 장소로 이동하기 위해 30여 분간 거리에서 벌벌 떨어야 했다. 스마트폰을 들고 ‘앱 택시’ 서비스인 카카오택시를 활용해 대여섯 번 택시를 호출했지만 응답이 없었기 때문이다. 택시 운전사들이 콜을 받고도 답하지 않은 것이다. 결국 10여 분을 걸어 나가 빈 택시를 겨우 잡았다.
승객들의 편의를 위해 개발된 스마트폰의 앱 택시 서비스가 택시 운전사들의 신종 승차 거부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승객들이 목적지를 앱에 입력하기 때문에 운전사들이 원하는 곳으로 향하는 손님만 골라 태우는 것이다. 승객들의 불편이 커지고 있지만 앱 서비스 운영 회사나 정부는 마땅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동아일보와 한국교통연구원이 지난해 10월 서울·인천·경기지역 앱 택시 이용자 1000명과 운전사 109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승객들은 한 달 평균 4.3회 택시를 이용했고, 이 중 앱 택시 서비스 이용이 2.6회로 나타났다. 지난해 3월 말 카카오택시가 서비스를 시작한 지 약 6개월 만에 앱 택시 이용이 전체의 60.5%를 차지할 정도로 늘어난 것이다. 앱 택시 서비스 이용 실태가 체계적으로 분석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분석 결과 앱 택시 서비스 운전사의 골라 태우기가 확인됐다. 거리별로 ‘5km 이상∼10km 미만’(50.2%)의 중거리 이용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이어 ‘10km 이상 장거리’(26.2%), ‘5km 미만 단거리’(23.6%)의 순으로 나타났다. 도착지별로는 경기 남부권과 서울 강남동권(강남·서초·송파·강동구)이 각각 25.6%, 20.6%로 가장 많았다. 반면 경기 동부권(0.2%), 경기 서부 및 인천권(4.8%)은 적었다. 강상욱 교통연구원 대중교통산업정책센터장은 “운전사들이 일부지역 승객을 골라 태우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앱 택시 서비스를 이용한 골라 태우기가 가능한 것은 이용자들이 택시를 부를 때 앱에 목적지를 입력하고 운전사들은 이를 확인하고 쉽게 거부할 수 있는 구조 때문이다. 카카오택시 운전사 이명수(가명) 씨는 “승객이 호출할 때 여러 운전사에게 동시에 콜 메시지가 전달되기 때문에 내가 원하는 도착지가 아니면 무시한 채 다른 승객을 찾아도 문제 될 게 없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일부 승객은 ‘거짓 호출’로 택시를 부르기도 한다. 온라인의 한 택시 운전사 카페에는 “택시에 타면 목적지를 잘못 입력했다며 다른 곳으로 가자고 요청하는 손님이 많다”고 하소연하는 글들이 올라온다.
일각에서는 승객들이 목적지를 입력하지 않고 호출하도록 앱 택시 운영 회사들이 제도를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달 시작된 고급형 택시호출서비스인 ‘우버 블랙’은 목적지를 공개하지 않고 차를 부를 수 있는 서비스를 마련해 골라 태우기를 방지했다고 주장한다.
택시가 부족한 시간대나 지역을 운행하면 인센티브를 주는 탄력적인 요금제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강 센터장은 “지자체들이 영국처럼 탄력 요금제를 실시할 필요가 있다”며 “앱 택시 운영사들도 골라 태우기를 막는 서비스를 개발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서울시 관계자는 “탄력 요금제는 사실상 요금 인상이라는 반발을 불러올 수 있다”며 “앱 택시 서비스의 호출 거절도 승차 거부로 규정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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