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 국면으로 들어가던 서울 지역 유치원 누리과정 예산 파동이 하루 만에 원점으로 돌아왔다. 서울시의회 다수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유치원 누리과정 예산 두 달 치를 우선 편성하기로 전날 의견을 모으고 26일 오전 11시 긴급 의원총회를 열었지만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전날 박근혜 대통령이 누리과정 예산 편성을 촉구하자마자 시의회가 예산을 편성하면 굴복하는 것이라는 반대 의견이 많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26일 시의회 더민주당 상황은 급박했다. 오전에는 “긴급 의총 후 오후 2시에 기자회견을 하겠다”고 밝혔다. 기자회견에는 박래학 시의회 의장과 신원철 더민주당 대표위원, 김문수 교육위원장, 신언근 예결위원장이 참석해 유치원 누리과정 예산 편성 관련 의사일정을 안내할 계획이었다. 더민주당은 29일 본회의를 열고 원포인트 예산안을 통과시킬 방침이었다.
그러나 오후 1시가 넘어 기자회견이 갑자기 취소됐다. 더민주당 소속 시의원 73명 중 53명이 참석해 논의했지만 이견이 많아 2월 2일 다시 의총을 열기로 했다는 것. 본보 취재 결과 이날 더민주당 소속 시의원 대부분은 “왜 우리가 대통령 발언에 굴복하는 것처럼 보여야 하느냐”는 의견이었다고 한다.
더민주당 소속의 한 의원은 “유치원들 상황이 어려우니 중앙정부가 버텨도 우리가 한발 양보하고 (예산을) 주겠다는 거였는데 하필 대통령이 어제 누리과정 예산을 해결하라고 하는 바람에 타이밍이 이상하게 됐다”고 말했다. 신 대표위원은 본보와의 통화에서 “김 위원장이 ‘당장 유치원 교사 급여 결제에 어려움이 있으니 2개월 치라도 편성하고 싸움을 진행하자’고 했지만 찬반 의견이 엇갈렸다”고 전했다.
2개월 치 누리과정 예산이라도 해결될 것으로 믿었던 유치원들은 분개했다. 당초 이날 오전 11시 집회를 하려다 예산을 편성한다는 전언에 급히 취소했던 한국유치원총연합회 서울지회는 특히 화가 났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의총 소식을 듣고 원장들은 오후 늦게 시의회로 가 항의하고 김 위원장을 만났다. 이명희 서울지회장은 “앞으로 누리과정 파동의 모든 화살을 시의회 소속 더민주당에 돌리겠다”고 말했다. 한 유치원 원장은 “교사들에게 곧 월급이 나올 거라고 다 얘기했는데 어떡하느냐”며 “자기 자식이 유치원에 다녀도 예산 갖고 장난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연합회는 27일 오후 조희연 서울시교육감과 만나 교육청이 사립 유치원의 대출을 허용하는 방안을 다시 논의하기로 했다.
서울과 달리 경기와 광주 전남 지역은 문제가 서서히 풀리고 있다. 경기도의회 더민주당은 유치원 누리과정 예산을 어느 정도 편성할지 결정해 28일 임시회에서 처리할 방침이라고 26일 밝혔다. 어린이집 2개월 치 예산(910억 원)은 경기도가 25일 오후 늦게 시군에 교부했다.
광주시의회는 광주시교육청이 27일 유치원 누리과정 3개월 예산 176억3900만 원을 추경으로 편성해 임시회에 상정하면 어린이집 누리과정 3개월 예산 182억 원을 함께 통과시킬 것이라고 26일 밝혔다. 어린이집 예산은 광주시가 긴급 지원할 예정이다.
전남도의회는 다음 달 3일 임시회에서 유치원 누리과정 5개월 예산 201억3000만 원과 어린이집 누리과정 5개월 예산 396억3000만 원을 함께 통과시킬 방침이라고 26일 밝혔다. 전남도의회, 전남도교육청, 유치원·어린이집 대표 등이 참여하는 대책위원회는 이날 오후 3차 회의를 열고 이같이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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