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대신 내가 잘하는것… 기부의 진화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2월 1일 03시 00분


[빅데이터로 본 한국의 기부 문화]<下>재능기부… 더 커진 나눔의 행복

대한민국 기부 트렌드가 바뀌고 있다. 전에는 매년 말 기업 임직원들이 작업복을 입고 달동네에 연탄을 배달하는 사진이 신문에 크게 실렸지만 요즘은 달라졌다. 꼭 현물이나 현금으로만 하는 게 기부가 아니다.

동아일보와 소셜빅데이터 분석업체 인사이터가 2008년 1월부터 2015년 11월까지 기부와 관련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650만 건의 글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상위 10개 연관어를 살펴본 결과 2012년 이후 ‘재능’이 65만9196건으로 압도적으로 많았다. 이 뒤를 ‘돈’(15만1839건), ‘문화’(14만4126건), ‘사회’(14만3499건) 등이 이었다.

패션디자이너를 꿈꾸는 한 여중생이 ‘CJ도너스캠프 꿈키움 스테이지’에서 선보일 운동화에 색칠하고 있다. 전국에서 선발된 중학생 200명은 꿈에 맞게 멘토를 지정받아 지도를 받았다.

노지현 기자

isityou@donga.com
패션디자이너를 꿈꾸는 한 여중생이 ‘CJ도너스캠프 꿈키움 스테이지’에서 선보일 운동화에 색칠하고 있다. 전국에서 선발된 중학생 200명은 꿈에 맞게 멘토를 지정받아 지도를 받았다. 노지현 기자 isityou@donga.com
○ 돈보다 재능 기부… 목표는 학생 교육

기부와 관련해 ‘재능’이라는 말이 SNS에 언급되기 시작한 것은 2010년부터다. 2008년과 2009년에는 한 건도 없었다. 재능기부는 2007년 국내 일부 전문직에서 시작된 ‘프로보노 운동’의 영향으로 태동했다. 라틴어 ‘공익을 위하여(Pro Bono Publico)’란 말에서 유래한 프로보노는 외국에서는 변호사가 무료 법률 조언을 해 주는 용어로 쓰인다. 그 무렵 국내에서도 프로보노 운동에 대해 언급하는 광고 전문가와 패션디자이너가 등장했다. 이들의 선행이 알려지면서 재능기부란 말이 2010년부터 본격적으로 사용됐다. 2011년부터는 평범한 음대생이 지역 아이들에게 노래를 가르치는 것처럼 일반인들의 나눔 소식이 빠르게 전파됐다.

재능기부는 새로워 보이지만 목표는 다른 기부와 같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구축한 뉴스빅데이터에서 1995∼2015년 기부 관련 기사 19만 건을 분석해 보니 2000년 이후 학생과 장학금은 이 기간 항상 10위권을 지켰다. 그동안 국내 기부자들은 전반적으로 불우가정 아이들에게 교육을 통해 ‘도약의 사다리’를 만들어 주려 했던 것을 보여 준다.

기업들의 사회공헌 형태도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지난달 23, 24일 서울 종로구 명륜동 성균관대에서 열린 ‘CJ도너스캠프 꿈키움 스테이지’에는 전국에서 선발된 중학생 200명이 무대에 올랐다. 요리, 미디어, 음악, 방송쇼핑, 뮤지컬 등 미래에 하고 싶은 일에 관해 32개 팀이 5개월 동안 준비한 작품을 선보이는 장이었다. 팀당 3명의 멘토가 함께 준비했다. 예컨대 학생들의 관심 분야가 요리라면 요리학과를 다니는 대학생, 스타 요리사, 식음료 담당 기업 임직원이 붙어 학생들에게 ‘요리사’의 세계를 경험할 수 있게 했다. 직업 선택을 하기 위해 준비 과정 노하우도 자세히 전달했다. 일회성 장학금으로 ‘물고기’를 주는 것보다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 준 셈이다. 붉은 꽃 코르사주로 장식한 발랄한 흰색 미니드레스를 입은 장예은 양(16·수원 중앙기독중 3) 팀은 딸기 쇼트케이크, 요구르트를 올린 샐러드, 선지해장국 등 음식을 모티브로 옷을 만들었다.

○ 한국형 팬 기부와 핀테크 기부

한국만의 특이한 현상은 2011년부터 기부 관련어 상위 30위권에 ‘팬’이란 단어가 꾸준히 등장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탤런트 박유천(30)의 팬클럽 ‘블레싱유천’은 6년간 기부 활동을 이어 왔다. 회원들은 2010년 말 박유천이 방송사 시상식에서 신인상 등을 받게 되자 그 기쁨을 나누기 위해 기부를 결정했다. 5000여 명의 회원들이 조금씩 힘을 보태 3600여만 원을 모아 형편이 어려운 한 어린이 화상 환자에게 전달했다.

이들의 기부는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았다. 회원들은 다 읽은 책을 모아 전남 신안군에 아이들을 위한 도서관을 지었고, 헌옷을 기부해 인천 계양구의 생태공원 조성을 도왔다. 이미영 블레싱유천 회장(48)은 “그동안 기부를 하고 싶어도 방법을 몰라 미루던 회원들이 뜻 맞는 사람끼리 모여 생활 속에서 기부를 실천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른 탤런트들도 팬들과의 유대를 활성화하면서 사회공헌에 동참하고 있다.

핀테크(FinTech·금융과 기술의 합성어)를 기부에 활용하는 것도 한국의 독특한 문화다. 기부 단체들이 소액 기부자를 늘리기 위해 금융과 정보기술(IT)이 결합된 핀테크 기술을 활용해 모금 활동을 하거나 카카오톡 ‘플러스친구’ 메신저 이용자에게 기부를 독려하는 메시지를 보내는 방식이다.

○ 기부에 부정적인 40%를 뚫어라

이번 SNS 빅데이터 분석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기부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이 40% 가까이 있다는 점이다. 20년 동안의 기사를 살펴보면 특히 기부단체가 모금액을 불투명하게 썼을 때 부정적인 반응이 많았다.

기부 선진국 미국에선 기부 사업의 진행 과정과 그 결과를 홈페이지에 올려 기부금 운영에 대한 불신을 원천 차단하고 있다. 1달러 단위까지 어떻게 쓰이는지 사업비와 운영비를 정확하게 나누고, 그래프를 그려 기부자들이 쉽게 알 수 있게 한다. 기부단체 스스로 자정 능력을 갖추도록 감시 제도도 잘 갖춰져 있다. 대표적으로 한 해 평균 690만여 명이 방문하는 미국 ‘채러티 내비게이터’는 ‘주의할 단체 목록’에 회계장부를 불성실하게 공시하거나 공금을 유용해 피소된 기부 단체를 명시해 기부자들이 안심하고 지갑을 열 수 있도록 돕고 있다.

노지현 isityou@donga.com·박희창·김재형 기자
#기부#재능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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