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림이法 1년… 여전히 나사 풀린 통학차량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2월 3일 03시 00분


청주서 8세 어린이 또 태권도車에 치여 참변

《 학교와 학원 통학차량 안전조치를 대폭 강화한 일명 ‘세림이법’이 시행된 지 1년이 지났다. 그러나 통학차량에 어린 생명이 희생되는 사고는 끊이지 않고 있다. 1일에도 충북 청주에서 여덟 살 어린이가 통학차량에 치여 숨졌다. 이번에도 아이들의 승하차를 도울 보호자가 따로 없었다. 세림이법으로 보호자 동승이 의무화됐지만 학원이나 체육시설에서 운영하는 15인승 이하 차량은 내년 1월까지 적용이 유예됐기 때문이다. 》

“아이가 (통학차량) 앞으로 지나갔잖아요. 조금만 더 주변을 살펴보면 되는데….”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김영철 씨(43)의 목소리는 떨렸다. 그는 2013년 3월 충북 청주시에서 일어난 통학차량 사고로 숨진 세림 양(당시 3세)의 아버지다. 사고를 계기로 통학차량 안전조치를 대폭 강화한 ‘세림이법’(개정 도로교통법)이 마련됐다. 하지만 세림이 사고가 나고 2년 10개월여 만인 1일 청주에서 또다시 통학차량에 치여 8세 어린이가 숨지자 그는 말을 잇지 못했다.

김 씨는 “피해 어린이는 차량 앞으로 지나가다 사고를 당했다. 차 앞쪽에 ‘보호센서’만 달았어도 이런 사고가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라며 안타까워했다. 그는 “다시는 이런 가슴 아픈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달라”며 대한민국의 모든 운전자들에게 호소했다.

김 씨의 절절한 호소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1월 세림이법이 시행됐지만 통학차량 관련 어린이 사망사고는 끊이지 않고 있다. 2015년 한 해 동안 50건이 넘는 통학차량 관련 교통사고가 발생해 5명의 어린이가 목숨을 잃었다.

○ 동승자 없는 통학차량 3만 대

1일 오후 7시 10분경 청주시 흥덕구의 한 아파트 단지에 근처 태권도학원의 12인승 통학차량이 도착했다. 엄모 군(8)이 내린 뒤 운전자 신모 씨(51)는 가속페달을 밟았다. 순간 통학차량 앞으로 지나가던 엄 군이 차량 앞부분에 부딪쳤다. 119구급대가 8분 만에 도착했지만 엄 군은 끝내 숨졌다. 통학차량에는 어린이들의 승하차를 인솔할 동승자가 없었다.

세림이법에 따라 9인승 이상의 통학차량에는 반드시 보호자가 동승해야 한다. 하지만 현재 ‘학원이나 체육시설에서 운영하는 15인승 이하 통학차량’은 보호자가 타지 않아도 된다. 영세업체가 많다는 이유로 2017년 1월까지 법 적용이 유예됐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기준으로 경찰에 등록된 어린이 통학차량은 8만8971대. 이번 사고처럼 내년 1월까지 보호자 탑승 의무가 유예된 통학차량은 3분의 1이 넘는 3만1220대(35.1%)에 이른다. 설재훈 한국교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인건비를 들이지 않고 안전을 확보하려면 운전자의 주의 의무를 강화할 수밖에 없다”며 “통학차량 운전자가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과 상관없이 사고를 내면 형사처벌 받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운전자와 동승자가 받아야 할 의무교육도 2년에 3시간에 불과해 안전의식 확보는 쉽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번 사고 역시 운전자가 기본적으로 차량 앞에 어린이가 있는지만 확인했어도 막을 수 있었다. 허억 가천대 도시계획학과 교수는 “차량 사각지대의 위험성을 제대로 인지하는 데 안전교육의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 통학차량 ‘암행 단속’ 실시한다

비슷한 통학차량 사고가 이어지자 경찰은 이른바 ‘암행(暗行) 단속’을 하기로 했다. 경찰청에 따르면 강신명 청장은 2일 경찰관의 위치를 노출시키지 않은 상태에서 통학차량의 불법행위를 단속하도록 직접 지시했다. 이에 따라 경찰은 앞으로 통학차량 운전자가 알아챌 수 없는 위치에서 승하차 상황을 촬영해 증거자료로 활용할 계획이다. 지금까지는 학교나 학원 밀집 지역에서 공개적으로 단속을 벌이다 보니 실효성이 낮다는 지적이 많았다.

경찰 관계자는 “승하차 과정에서 통학차량의 불법이 적발되면 해당 시설을 직접 조사할 방침”이라며 “이동식 단속도 강화해 난폭운전을 하는 등 운전 습관이 위험해 보이는 통학차량은 끝까지 단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성택 neone@donga.com·박성민 / 청주=장기우 기자
#통학차량#세림이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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