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유럽에 다녀왔다. 두 달 전 태어난 여덟 번째 조카 카미유를 보고 싶었다. 계속 늘고 있는 우리 가족을 만나러 가는 길에 친한 친구의 마흔 살 생일파티에도 들렀다.
고향에 돌아갈 때마다 특히 오랜만에 보는 동창들로부터 한국과 한국 생활에 대한 여러 질문들을 늘 받는다. 솔직히 몇 년 전부터 그 질문들에 열정적으로 대답하기가 좀 귀찮아졌다. 한국과 유럽의 차이가 만만찮기 때문이다. 한국 생활이 여전히 새로웠을 때는 내가 체험하고 있었던 크고 작은 차이에 대해 재밌게 이야기하기가 쉬웠다. “길에서 번데기를 판다” “청국장 냄새는 장난이 아닌데 얼마나 맛있는지 몰라” “한국 사람은 핸드폰 보이스 메일을 거의 안 쓴다니까” “식당 테이블 위에 손님용 화장지 두루마리가 있어, 진짜야” 등으로.
이젠 그 두루마리 휴지는 거의 사라졌고 나한테도 더 이상 신기한 것이 거의 없다. 일반적인 한국 것들에 대해서도 설명하는 것도 어느덧 지겨워졌다. 그래서인지 한국의 특징에 대한 질문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답하기 힘들다. 궁금해 하는 외국 친구에게는 ‘한국이 참 재미있다’고, ‘한 번 놀러 와서 직접 실감하라’고 방한을 강하게 권하곤 한다.
사실 요새 제일 눈에 띄는 것은 차이점보다는 유사점이다. 한국과 유럽 사회가 이미 비슷한 점이 많고 계속 닮아가는 것 같다. 외국인한테 낯설거나 이국적인 것들은 여전히 많지만 본질적으로 볼 땐 사람의 인간적인 면과 악한 면이 양쪽에서 상당히 비슷하게 나타난다. 그리고 한국이 유럽보다 훨씬 편리하고, 안전하고, 또 앞서 있는 부분이 꽤 있다.
그런데 친구가 한국 사회의 성차별에 대해 물어 보면 긍정적으로 말할 수 없다. 소주 광고나 성형수술 유행병을 떠올렸을 때 특히 그렇다. 그 뿐 아니라 남성우월적인 사고가 근본적으로 심한 곳들이 많은 것 같다. 집에서나, 길에서나, 직장에서나 어디서나. 맞벌이 가정 중에서도 집안일을 균형 있게 분담하는 부부를 찾아보기 어렵다. 직장에서도 남녀의 직책이 균형 있게 배치되지 않은 곳이 많다.
내가 직접 경험해서 제일 잘 아는 분야인 출판계만 봐도 성차별이 분명하게 느껴진다. 통근 수단인 2200번 버스를 타고 파주 출판단지에 함께 출퇴근하는 승객들이 대부분 여성인 걸 보면, 출판사에 다니는 직원들이 주로 여자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지만 사내에서 중요한 일을 결정하는 사람들은 아저씨들이 압도적으로 많다. 출판계가 생각보다 상당히 보수적인 이유 중 하나일 듯하다. 영화계에도 여자 감독은 드문 편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요즘 나오는 주류 한국 영화가 훨씬 기발하고 재미있지 않았을까 싶다.
기본적으로 여성한테 친절한, 아니 공정한 환경이 될 만한 업계가 과연 얼마나 될까. 물론 성차별은 한국만의 특징은 아니다. 이는 대통령의 성별과도 무관한 문제다. 미국의 경우 오바마가 대통령이 된 지 거의 8년이 됐음에도 사회 속 인종차별과 인종 불평등은 여전히 심각하며 어떤 면에서는 더욱 악화됐다. 인종차별이든, 성차별이든 이토록 뿌리가 깊은 사회적 고질병은 시민의 사고방식이 철저히 변해야만 나아질 수 있다. 한국도 개선해야 할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성차별에 대한 변혁이 필요한 건 세계적 추세다. 도널드 트럼프 같은 철면피 마초가 미국 공화당 대통령 후보가 1일 아이오와 경선에서 공화당 2위를 차지하는 걸 보면 참 비통하다. 또 지난달 프랑스에서는 앙굴렘 국제 만화 축제 심사위원단이 발표한 최우수상 후보 1차 명단에 여자 만화가가 서른 명 중 단 한 명도 없어 많은 비난을 받았다. 욕을 먹어 마땅하다.
이렇듯 세계 뉴스에서 성차별 사례를 찾기는 식은 죽 먹기다. 출판사 미메시스에서 올해 ‘일상 속의 성차별(Everyday Sexism)’ 이라는 인문서가 나오는데 그 제목이 정말 와 닿는다. 연봉차이, 여성 비하 발언, 여성의 대상화 같은 매일 겪게 되는 ‘일상적인’ 성차별과 여성에 대한 폭력은 결코 간과해선 안 될 시급한 문제다. 사회 정의와 공공복지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더욱 그렇게 느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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