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이진]좌편향 ‘우수도서’?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2월 4일 03시 00분


코멘트
‘망국의 역사, 조선을 읽다’(돌베개)를 쓴 재야 사학자 김기협은 경기고 이과를 수석 졸업하고 서울대 문리대 수석 입학으로 물리학과에 들어갔지만 역사 연구로 방향을 틀어 사학과를 졸업했다. 그의 부친은 6·25전쟁 때 인민군 치하의 서울에서 숨어 살던 3개월을 생생한 일기(‘역사 앞에서’로 출간)로 남긴 김성칠 서울대 사학과 교수이다. 김기협은 해방 정국을 ‘해방일기’ 10권으로 펴냈고 어머니인 원로 국문학자 이남덕 전 이화여대 교수의 노년을 시병(侍病) 일기인 ‘아흔 개의 봄’으로 정리했다.

▷‘청년지식인포럼 스토리K’라는 단체는 문화체육관광부가 2011년 역사 부문 우수 교양도서로 선정한 ‘망국의 역사’를 좌편향이라고 비판했다. 이 책의 일부 내용이 한국의 정통성, 발전상과 시장경제를 부정했다는 것이다. 이 책의 에필로그는 ‘한국은 아직도 식민지 사회다. 정해진 식민 지배자가 없는데도, 미국이든 국제 거대 자본이든 상전을 모시고 싶어 하는 식민지 사회다’라고 마무리된다. 이 구절만 놓고 보면 ‘대한민국이 어떻게 식민지라는 말이냐’라고 분통을 터뜨릴 만하다고 본다.

▷김기협은 조선이 일제의 강압적 근대화를 겪는 바람에 보존해야 할 전통이 말살됐다고 봤다. 전통과 변화의 순조로운 연결이 차단된 것이 타율적 근대화의 가장 근본적인 피해라고 지적했다. 옛 지배층이 백성과 이익을 아귀다툼하는 ‘여민쟁리(與民爭利)’를 가장 수치스럽게 여겼던 도덕적 전통도 사라졌다는 것이다. 그의 이런 관점은 식민지 근대화론도, 식민지 수탈론도 아닌 제3의 근현대사 접근방식일 수 있다.

▷정운찬 총리 시절 김기협은 경기고-서울대 선배인 그를 향해 ‘치세의 능신, 난세의 등신’이라며 총리직을 던지라고 직언했다. ‘치세의 능신, 난세의 간웅’인 조조의 평가를 비튼 말이다. 김기협의 부친은 전사(戰史)편찬위원을 그만둔 직후 피란지 부산에서 제사를 모시러 고향 영천에 갔다가 피격돼 38세에 숨졌다. 김기협은 이력으로 보나 문제의식으로 보나 좌우의 틀로 재단하기 힘들다. 이래서는 목소리 낮은 중도가 움츠러들 수밖에 없다.

이진 논설위원 leej@donga.com
#우수도서#김기협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