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터민 박모 씨(52·여)는 7년째 지독한 불면증을 겪고 있다. 수면제 10알을 입에 털어 넣어야 잠이 든다. 종합병원을 전전하며 심리치료와 수면장애 치료를 받아왔지만 큰 효과를 보지 못했다. 밤새 뒤척이다 일어나면 기억력이 떨어지고 온몸이 쑤신다고 했다.
함경북도 무산 출신인 박 씨는 중국, 태국을 거쳐 2009년 한국에 들어오기 전 3차례 탈북에 실패한 경험이 있다. 이 때문에 정착 초기에는 밤마다 중국 공안이 찾아오거나 어두컴컴한 취조실에서 고문당하는 꿈에 시달렸다. 환각장애로 입원하기도 했다. 증세가 좋아진다 싶을 때쯤 어머니가 탈북을 시도하다 끝내 북송됐다는 소식에 다시 가슴을 쥐어뜯어야 했다. 박 씨는 “처음에 2알이던 수면제 양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며 “뭔가 불안한 마음이 사라지지를 않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했다.
박 씨처럼 불면증을 호소하는 새터민이 일반인에 비해 4배 더 많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삼성서울병원 김석주 교수팀이 새터민 177명과 일반인 315명을 대상으로 불면증과 우울증, 정신적 외상 등 심리적 상태를 비교 분석한 결과 3주 이상 잠을 못 자 치료가 필요한 불면증을 경험한 새터민은 38.4%에 달했다. 일반인(8.8%)의 4배에 이르는 수치다.
또 불면증과 함께 우울증 증세를 보인 새터민은 28.2%. 일반인(3.17%)보다 월등히 많았다. 연구에 참여한 탈북자의 절반 가까운 40.1%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증세를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빈사 상태에 빠질 정도의 굶주림을 경험했거나 목숨을 위협받을 정도의 사건, 탈북 후 심각한 구타 또는 인신매매를 당한 경우 트라우마가 더 깊게 남는 것으로 보인다. 설문에 응한 새터민들은 정신적 외상을 일으킬 만한 사건을 평균 6.73개씩 경험했다고 답변했다.
이번 연구는 대한신경의학회가 발행하는 ‘심리연구(Psychiatry Investigation)’ 최근호에 게재됐다. 김석주 교수는 “탈북 이후 한국사회에 쉽게 적응하지 못해 심리적 불안감을 달고 사는 것도 병을 키우는 원인”이라며 “불면증의 이면에 우울증과 PTSD가 숨어있는 사례가 많은 만큼 제 때 치료받을 수 있도록 주위의 배려와 관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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