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꽂이인지, 돈꽂이인지…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2월 17일 03시 00분


꽃디자이너 인기 편승 22회 수업료 400만원… 일부 꽃집선 수료증 장사
“수입꽃만 사용” 90분 수업 30만원… 알바생이 강의 등 무자격 강사 기승

“오늘은 오트쿠튀르(고급 재봉) 스타일로 ‘화려하신’ 부케를 만들어 볼 거예요.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온 진귀한 아이들이라 컨디셔닝(상태)도 좋답니다. 그루핑(다듬기)을 해주고 셰입(모양)을 만들어 주세요.”

16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유명 꽃집 꽃꽂이반. 세련된 메이크업과 우아한 복장, 화려한 손톱에 고급 커피를 든 20대 중반 여성 8명이 플로리스트(꽃 디자이너)의 손길을 유심히 지켜봤다. 보통 수업료는 1회에 20만 원. 그래도 인기가 많다.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20, 30대 여성들 사이에서 꽃꽂이가 고급 취미생활로 떠오르며 값비싼 꽃꽂이반 수강이 유행처럼 퍼지고 있다. 중심지는 학원이나 문화센터도 아닌 서울 강남의 유명 꽃집들이다. 여성 직장인 사이에서는 퇴근 후 꽃집에서 직접 만든 꽃을 들고 ‘힐링 인증샷’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리며 우아한 삶을 자랑하는 것이 대세가 됐다. 젊은 여성들이 ‘보여주기 식 삶’의 하나로 고급 꽃꽂이반을 수강하며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자격이 의심되는 플로리스트들이 여성들의 허영심을 이용해 터무니없는 수업료를 요구하는 사례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강남 꽃꽂이반 수강료는 1시간 30분에 10만∼30만 원 정도다. 수입 꽃만 쓴다는 고급 취미반은 22회 수업에 400만 원으로, 대학 등록금과 맞먹는다. 재료값이 만만치 않다고 하지만 수입 꽃의 원가가 1단(10송이)에 1만∼2만 원인 점을 비춰 보면 수긍하기 힘들다. 수강료에 비해 강의 수준이 턱없이 낮은 수업도 많아 학생들 사이에서는 “수업료로 꽃다발 한 뭉텅이를 사는 게 낫겠다”는 볼멘소리도 터져 나온다. 직장인 박선영 씨(30·여)는 “강사가 꽃 이름도 모르던데 알고 보니 ‘알바생(아르바이트 학생)’이었다. 친구들과 ‘돈만 날렸다’며 씁쓸하게 웃었다”고 말했다. 강남의 한 꽃집 사장은 “창업반은 내가 가르치지만 취미반은 알바생들이 가르치니 창업반 수업을 들어라”고 권유하기도 했다.

일부 꽃집에서는 자체적으로 수료증을 만들어 주면서 무자격 플로리스트를 양산하고 있다. 50회에 890만 원짜리 창업반 수업을 들으면 수료증을 받는 식이다. 국가공인 플로리스트 자격증은 한국산업인력공단에서 주관하는 화훼장식기능사 하나다. 대한플로리스트협회 등 30여 개의 민간법인도 자격증을 준다.

그럴싸한 ‘스펙’을 만들기 위해 3000만 원에 영국 8주 유학을 추천하는 브로커도 성업 중이다. 브로커 N 씨는 “3000만 원으로 4∼8주 영국 런던의 플라워스쿨에 다녀오면 한국에서 대우가 달라진다”고 했다. 11년 차 플로리스트 차효연 씨(31·여)는 “플로리스트는 최소 3년 이상 경력을 쌓아야 하는 전문직이다. 단기간에 전문가가 된다는 말에 속으면 안 된다”고 조언했다.

전주영 aimhigh@donga.com·서상희 채널A 기자
#꽃디자이너#플로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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