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출신 성악가, 러 국가훈장 ‘푸시킨 메달’ 받았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2월 19일 03시 00분


러시아에서 국민 시인으로 추앙받는 푸시킨을 기리기 위해 러시아 정부가 세계 문화예술인에게 푸시킨 메달을 수여하고 있다. 성악가 이연성 씨(오른쪽)가 11일 주한 러시아대사에게서 국내 음악인 가운데 최초로 이 메달을 받았다. 이연성 씨 제공
러시아에서 국민 시인으로 추앙받는 푸시킨을 기리기 위해 러시아 정부가 세계 문화예술인에게 푸시킨 메달을 수여하고 있다. 성악가 이연성 씨(오른쪽)가 11일 주한 러시아대사에게서 국내 음악인 가운데 최초로 이 메달을 받았다. 이연성 씨 제공
서울 중구 남대문로 롯데백화점 앞을 지나다 보면 대문호의 전신 동상 하나가 세워져 있다. 러시아 최고 지성인이자 문인으로 추앙받는 알렉산드르 푸시킨의 동상이다. 2013년 11월 방한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제막식에 참석했다.

러시아에서 유학한 인천 출신 성악가 이연성 씨(47)는 당시 푸틴 대통령 앞에서 푸시킨의 시를 가사로 한 러시아 국민 애창곡 ‘그대를 사랑했소’를 노래했다. 롯데그룹은 동상 주변을 ‘푸시킨 광장’으로 조성해 문화공간으로 가꾸고 있다.

러시아 정부는 11일 국가 훈장인 ‘푸시킨 메달(문화예술훈장)’을 이 씨에게 주었다. 그는 이날 주한 러시아대사관에서 푸틴 대통령을 대신한 알렉산드르 티모닌 대사에게서 이 메달을 전달받았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라는 시구절로 친숙한 푸시킨은 러시아 국민문학 창시자여서 그의 시를 노랫말로 한 노래가 수없이 많은 ‘국민시인’이다.

러시아는 푸시킨 탄생 200주년을 맞은 1999년부터 대통령이 직접 수여하는 푸시킨 메달을 제정했다. 세계적으로 문화예술교육 분야에서 두드러진 공적을 쌓은 내국인과 외국인을 수상자로 선정하고 있다.

국내에선 수필가 전숙희 씨가 처음 수상했고, 이기수 전 고려대 총장, 김현택 한국외국어대 교수, 김선명 푸시킨하우스 원장 등에 이어 이 씨가 10번째다.

국내 음악인으로서 처음 이 메달을 받은 이 씨는 신학대 재학 시절 교회음악을 공부하던 중 러시아 민요에 반해 1995년 러시아 유학길에 나섰다. 이후 모스크바 차이콥스키음악원에서 석·박사 과정을 마치고 동양인 최초로 모스크바 국립 스타니슬랍스키 오페라 및 발레극장 정규단원으로 활동했다. 그는 2008년 시인으로도 등단했고, 푸시킨 시 등을 가사로 한 시집 겸 노래집 ‘푸시킨과 러시아 로망스’를 출간한 바 있다.

러시아어에 능통한 이 씨는 통역사로도 나선다. 1904년 러일전쟁 때 인천 앞바다에서 침몰된 러시아 함정(바랴크함) 추모식이 매년 열리는데, 러시아 고위 인사들의 요청으로 이 행사에 자주 참석하고 있는 것.

이와 별도로 이 씨는 매년 4월 주한 러시아대사관에서 러시아 유명 성악가를 기리는 음악회를 주도하고 있다. 그의 스승이자 러시아 인민배우인 고려인 3세 성악가 류드밀라 남(1947∼2007)을 위한 추모 음악회를 마련해 성악과 국악의 퓨전 공연을 이어가고 있다. 남 씨는 1988년 서울 올림픽 때 서울 예술의전당과 세종문화회관에서 가곡 ‘그리운 금강산’ 등을 불렀다.

이 씨는 청와대 국빈 만찬장 무대에 세 차례나 섰다. 2010년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때 방한한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과 이명박 전 대통령을 위해 청와대 영빈관에서 러시아 민요를 불렀다. 이후 우즈베키스탄 대통령이 청와대를 찾았을 때 두 차례 청와대 공연자로 초청받았다. 그는 현재 러시아 국립 크라스노야르스크 오페라극장 객원단원으로 양국을 자주 오가고 있고, 국내에서 공연단체 ‘나르타’와 ‘3베이스’를 이끌고 있다. 이 씨는 “한국과 러시아의 음악 교류가 활성화하는 데 작은 밀알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박희제 기자 min0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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