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 어르신 자서전 쓰며 삶의 소중함 배웠어요”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2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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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교육청 ‘자서전 프로젝트’ 도입… 30개 초중고교 400여명 학생 참여
28명 인터뷰 묶은 15권 1차로 출간

전북도교육청에서 15일 열린 ‘아이들이 쓰는 어르신 자서전’ 출판기념회에는 자신의 일생을 구술한 노인들과 이를 받아 쓴 학생 등 100여 명이 참석해 훈훈한 모습을 연출했다. 전북도교육청 제공
전북도교육청에서 15일 열린 ‘아이들이 쓰는 어르신 자서전’ 출판기념회에는 자신의 일생을 구술한 노인들과 이를 받아 쓴 학생 등 100여 명이 참석해 훈훈한 모습을 연출했다. 전북도교육청 제공
알 수 없는 이유로 일곱 살에 눈이 멀어 평생 시각장애인으로 살아온 백기순 할머니(74·전북 부안군 백산면). 스스로 ‘뭐 하나 내세울 것 없는 인생’이라고 생각했던 백 할머니가 자서전을 갖게 됐다. 자서전 제목은 ‘응답하라, 나의 청춘’. 저자는 중학교에 다니는 백 할머니의 외손녀인 서천 양(15·부안 백산중 3학년)이다. 서 양은 ‘부끄럽다’며 손사래를 치는 외할머니를 일곱 차례 만나 20여 시간 동안 살아온 얘기를 듣고 녹음했다.

외손녀의 첫 질문은 “할머니는 어떻게 앞을 못 보게 되셨어요?”였다. 서 양은 “할머니의 한 많은 인생 얘기를 정리하면서 할머니를 더 깊이 이해하고 사랑하게 됐고 책 표지에 저자로 내 이름이 올라 있는 게 너무나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자서전은 전북도교육청이 추진한 ‘아이들이 써 드리는 어르신 자서전’ 프로젝트의 결과물이다. 초중고교생들이 주위의 평범한 할아버지, 할머니를 만나 살아온 이야기를 듣고 채록해 책으로 묶어낸 것이다. 다른 사람의 삶을 통해 자신의 삶을 성찰하고 세대 간 깊은 골을 좁혀 보자는 취지다. 듣기 활동을 통해 요즘 아이들에게 부족한 공감능력을 키우고 글쓰기 능력을 높이려는 목표도 있었다.

지난해 9월부터 시작된 이 프로젝트에는 전북지역 30개 학교에서 400여 명의 학생이 참여했다. 도교육청은 학교에 인터뷰와 구술 관련 책을 지원하고 글쓰기 강사를 보내 주기도 했다.

28명의 어르신을 인터뷰한 15권의 책이 이번에 1차로 출간됐고 마무리 단계에 있는 20여 권도 조만간 세상에 나올 예정이다. 올해 말이면 자서전이 100권을 넘을 것으로 보인다.

한 권에 한명부터 아홉 명까지 분량이 다양하고, 형식도 그림책부터 소설 스타일까지 제각각이다. 그러나 할머니, 할아버지들에게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선물이 됐다. 하찮게 생각했던 자신의 삶이 충분히 가치 있으며 후손들에게 교훈이 될 수도 있다는 자부심을 심어줬기 때문이다.

자서전 쓰기는 아이들에게도 생각지 못한 변화를 가져왔다. 힘겨운 삶을 헤쳐온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보고 들으며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게 된 것이다. ‘문제아’가 모범생으로 변하기도 했고 진로를 고민하던 한 학생은 소설가로 길을 잡기도 했다.

자서전을 지도했던 부안 백산중학교 허누리 교사는 “처음에는 어색해하던 아이들이 책을 완성해 가는 과정에서 정서적으로 깊어지는 변화를 느낄 수 있었다”며 “평범한 할머니, 할아버지의 생애도 책으로 남길 만한 가치가 있다는 점을 아이들이 깨닫게 된 게 무엇보다 큰 성과”라고 말했다.

책은 교육 목적으로 출간했지만 일부는 잘 다듬어서 출판시장에 내놓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어르신들의 파란만장한 삶을 많은 사람과 공유하면 좋겠다는 뜻에서다.

15일에는 전북도교육청에서 책을 쓴 학생과 어르신 100여 명이 모여 출판기념회도 열었다.

사업을 기획한 최병흔 전북도교육청 장학사는 “아이들이 처음에는 노인들의 자서전을 써드린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그 과정에서 많이 배웠다는 말을 한다”며 “학생들이 노인들이 살았던 시대를 이해하고 미래의 스토리텔링 자산을 확보한다는 차원에서도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김광오 기자 ko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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