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 시선]심리부검에 응하는 유족에 따뜻한 손을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2월 19일 03시 00분


백종우 중앙심리부검센터장 경희대 의대 교수
백종우 중앙심리부검센터장 경희대 의대 교수
2014년 우리는 1만3836명의 생명을 자살로 잃었다. 고인에게 4명의 가족과 2명의 가장 친한 친지가 있었다면, 매년 유가족과 친지만 8만 명이 넘는다. 10년이면 80만 명이 감내해야 하는 충격이다. 유족들은 ‘나는 왜 막지 못했나?’ ‘도대체 왜?’라는 끝없는 물음과 함께 죄책감, 분노, 주변의 시선과 편견에 시달린다.

이런 현실에서 지난해 유가족 151명이 침묵을 깨고 전문가를 찾아 고인의 삶과 죽음에 대해 전했다. 너무 망설여져 문 앞에서 한참 헤매기도 한 유가족들은 심리부검 면담에서 때로는 아팠지만 온전히 고인을 마주할 수 있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대다수가 면담 후 긍정적인 변화를 경험하였다고 답해 주었다.

우리나라에서 심리부검은 용어조차 낯설다. 보건복지부는 2013년 중앙심리부검센터를 설립했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정신보건사회복지사 등 센터의 전문가들은 전국의 유가족을 찾아갔다. 심리부검은 유가족을 만나 고인의 삶과 사망 원인을 체계적으로 조사하며 건강한 애도를 돕는 면담이다. 이를 통한 기록은 다른 사람들에게 예방할 길을 보여 준다. 한때 우리만큼 자살률이 높았던 핀란드는 10년 만에 그 비율을 절반 이하로 낮췄다. 국가 차원에서 심리부검 전수 조사와 예방 정책을 실행했기 때문이다.

중앙심리부검센터는 최근 121명의 분석 결과를 보고했다. 사망자의 93.4%는 스스로 목숨을 끊기 전 경고 신호를 보냈으나 유가족의 19%만이 이를 인식했다. 사망 당시 88%가 우울증 등 정신 질환이 있었으나 15%만이 꾸준히 치료를 받고 있었다. 40%는 음주 상태였고 25%는 음주 문제를 겪고 있었다. 수많은 스트레스로 그들은 남몰래 절망하고 있었던 것이다.

누구든 위험을 인지하고 알리면 한 생명을 살릴 수 있다. 보건복지부는 한국자살예방협회와 함께 ‘보고 듣고 말하기’라는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최근 3년간 16만 명이 이수했지만 더욱 확산돼야 한다. 복지 서비스가 있어도 절망에 더해진 우울증은 가능한 도움마저 포기하게 만든다. 위기에 처한 이들을 지원할 정책과 현장의 권한이 확대돼야 한다. 정신 질환 치료율을 획기적으로 높일 개선책이 필요하다.

유가족에 대한 지원책 마련도 절실하다. 선진국의 자살 예방 정책은 유가족 지원에 핵심적 우선순위를 둔다. 우리나라에선 심리부검이나 자조 모임에 참여하는 유가족은 아직 턱없이 적다. 침묵을 깨고 세상에 목소리를 낸 이들의 메시지는 간단하다. 자신의 이야기가 다른 사람의 고통을 줄이는 데 보탬이 되게 하고 싶다는 것이다. 이들의 아름답고 용기 있는 행동에 우리 사회가 감사하며 따뜻한 손을 내밀 수 있기를 기대한다.

백종우 중앙심리부검센터장 경희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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