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연의 트렌드 읽기]아날로그로 가야 감성이 산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2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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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권기령 기자 beanoil@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 권기령 기자 beanoil@donga.com
박성연 크리베이트 대표
박성연 크리베이트 대표
손끝만 터치하면 영화를 볼 수 있는 요즘 세상에 필름 영사기를 돌려 상영하는 한 영화가 주목을 받았다. 바로 영화 ‘캐롤’이었다. 이 영화는 관객에게 그런 식으로 다가가 뉴욕비평가협회에서 최우수 작품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수도꼭지를 틀면 물이 흘러나오듯 버튼만 누르면 음악을 스트리밍(실시간 데이터 수신)으로 듣는 이 시대에 구닥다리 같았던 LP(장시간 연주용 음반)가 다시 인기몰이 중이다. 가수 지드래곤의 ‘쿠데타’ LP 8888장은 하루 만에 다 팔렸다. 얼마 전 세상을 떠난 데이비드 보위의 유작 앨범 블랙스타 LP는 사흘 만에 절판된 뒤 재발매에 들어갔다. 클릭으로 음악을 듣는 편리함 대신 앨범 재킷을 벗기고 LP 플레이어의 가느다란 바늘을 원하는 트랙에 올리고 “지직” 하는 소음을 기꺼이 감수하는 아날로그 감성이 소비 욕구를 건드린 결과로 보인다.

온라인, 모바일에서 출발한 기업들도 비즈니스 모델에 아날로그 감성을 집어넣고 있다. 이 기업들이 오프라인에서 브랜드 체험 공간을 여는 것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카카오, 라인 등은 이모티콘을 실물 캐릭터로 만들어 오프라인 매장을 열었다. 모바일 메신저 속 이모티콘으로 존재하던 귀여운 캐릭터들이 고객을 직접 만나고 있는 것이다. 이들 가게 매출의 70%가 내국인이 아닌 외국인 주머니에서 나온다고 한다. 벌써 외국인 관광 명소로 떠올랐다. 서울 신사동 가로수길이나 이태원 매장에는 주말이면 제품을 구입하거나 사진을 찍는 인파가 장관이다. 이 여세를 몰아 이런 캐릭터는 최근 팬시용품뿐만 아니라 의류 보석류에도 등장한다. 이모티콘은 온라인에서 말 대신 감정이나 대화를 손쉽게 하는 용도였지만 이제는 실생활에서도 만져보는 제품이 된 것이다.

디지털에서 아날로그로 역주행하는 추세는 해외에서도 마찬가지.

온라인 쇼핑몰을 운영하는 아마존은 최근 ‘아마존 북스토어’를 열었다. 오프라인 서점을 무너뜨리며 성장했던 온라인 기업이 이번엔 거꾸로 오프라인에 서점을 연 것이다. 물론 기존 서점과는 다르다. 책뿐만 아니라 아마존이 만든 책 전용 소프트웨어인 ‘킨들’이나 음성인식기기인 ‘에코’ 같은 전자제품도 매장에 내놓고 있다. 책 밑에는 가격표 대신 독자들로부터 나온 리뷰와 별점이 적혀 있다. ‘별 4.8 이상’과 같은 리뷰나 ‘이 지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책’과 같은 인기도 순위가 눈에 띈다. 이 매장은 온라인의 고객 경험(Consumer Experience)을 직접 체험하도록 재설계한 것이다.

이런 매장은 새로운 수익의 원천이다. 온라인으로 안경을 팔았던 와비파커는 오프라인 매장으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이 회사는 인터넷 홈페이지에서 마음에 드는 안경을 골라 주문을 해 안경을 써본 후 자신의 시력과 눈 사이 거리 등을 다시 입력해 맞춤 안경을 배달해왔다. 동네 안경점과는 전혀 딴판이어서 미국에서도 혁신 기업 상위에 올랐다. 그런데 요즘은 오프라인 매장을 늘림으로써 쏠쏠한 수익과 함께 회사의 덩치를 키우고 있다.

손편지가 e메일로 대체됐고, ‘장바구니’ 하면 온라인 쇼핑이 먼저 떠오를 만큼 디지털은 아날로그를 압도해왔다. 그런데 디지털의 지향점이 아이러니하게도 최대한 아날로그처럼 구현하는 것이 됐다. e북이 끊임없이 지향한 바가 마치 실제 책을 보는 것 같은 경험이 된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아날로그 감성을 불어넣는 회사는 단순한 아날로그식의 ‘재현’을 추구하지 않는다. 디지털에서 느꼈던 경험을 어떻게 그 브랜드만의 고유한 방식으로 아날로그 감성으로 녹여 낼 것인가가 핵심이다. 아날로그로의 역주행을 설계해주는 회사도 한몫을 챙기는 생태계가 생겨날 수밖에 없다.

요즘 소비자들도 디지털에서만 보던 것을 아날로그로 옮겨와 직접 실체를 느끼고 싶어 한다. 왜 이렇게 아날로그 감성이 다시 주목받을까. 사람들은 아날로그로 구현된 환경에서 더 편안함, 아늑함을 느낀다. 아날로그 세상에서 오감으로 실제로 느끼고 싶어 하는 게 소비자의 원초적 수요인데 여태껏 디지털이라는 중압감에 눌려 있었던 것이 아닐까.

박성연 크리베이트 대표
#캐롤#아날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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