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천경자 화백이 국립현대미술관에 소장된 ‘미인도’가 자신의 작품이 아니라고 주장한 위작 논란은 1991년 4월 시작됐다. 그러나 미술관의 감정을 의뢰받은 한국화랑협회는 세 차례의 감정을 거쳐 불과 수십 일 만에 미인도가 진품이라고 발표했다. 그 후로도 미인도를 둘러싼 위작 시비는 끊이지 않았지만 검찰 수사는 단 한 번도 이뤄지지 않았다.
그러나 조만간 사법기관이 미인도의 진위를 가려낼 것으로 전망된다. 최근 자신이 천 화백의 친생자라는 사실을 확인해 달라는 소송을 제기한 김정희 미국 몽고메리대 교수(62·여)가 법원의 판단을 받는 대로 국립현대미술관 측을 사자(死者) 명예훼손 및 저작권 위반 혐의로 고소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검찰이 수사에 착수할 경우 2007년 ‘이중섭 박수근 미술품 위작 수사’를 잣대로 삼을 것으로 보인다.
2007년 검찰은 사망한 지 수십 년이 지난 박수근 이중섭 화백의 미술품이 위작임을 밝혀냈다. 서울중앙지검은 물감 성분분석 등 과학 감정 기법을 활용해 2834점 모두를 위작으로 규명해 관련자를 기소했고 법원도 1, 2심 모두 위작으로 판단했다. 이 사건은 현재 대법원에서 심리하고 있다.
당시 법원 판결문에 나타난 미술품 위작 판단의 기준은 ‘해당 작가가 사망하고 출처를 모르는 상태에서 작품의 위작 여부는 안목(眼目) 감정, 과학 감정, 자료 감정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다’는 것이었다.
전문가가 다른 작품과 비교해 판단하는 안목 감정은 주로 감정위원, 미술평론가, 미술사학자가 하지만 유족들의 감정도 중요한 요소로 꼽힌다. 2007년 당시 재판부는 박수근 화백의 자녀들이 “필체나 색감, 경향 등이 다르다”고 주장한 점을 고려했다. 미인도 위작 논란에서도 김정희 교수는 물론이고 첫딸인 이혜선 씨를 포함한 모든 유족이 미인도가 위작이라고 주장하고 있어 미인도가 진품이라고 주장하는 측에 불리하게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X선 형광분석기, 적외선 촬영 등 과학 감정도 중요한 요소다. 검찰은 2007년 박수근 위작품에 사용된 물감이 1965년 박 화백 사망 이후에 나온 물질임을 밝혀냈고, 법원도 이를 받아들였다. 작품의 출처를 밝히기 위해 진행되는 자료 감정에서는 미술품이 소장자에게 넘어간 경위가 정확하게 드러나야 한다. 법원은 “유족이나 지인 등 화가의 주변 사람들로부터 구매했다거나 화가가 작업하던 장소에서 발견됐다고 하는 등 소장 경위를 수긍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견이다.
2007년 검찰 수사팀의 핵심 관계자는 “미인도는 화백이 위작이라고 주장하고 미술관 측은 진품이라고 맞서는 극히 드문 사안”이라며 “미인도가 어떻게 미술관 측으로 넘어갔는지 등의 경위가 위작 여부를 판단하는 데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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