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 전까지 학교서 공부하고 싶어요” 행복한 할머니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2월 23일 16시 39분


이제 은행가는 게 두렵지 않다. 은행원에게 “돈을 찾고 싶은데 액수랑 이름 좀 써 달라”고 하지 않아도 된다. 지하철역에서 몇 분 뒤에 다음 차가 오는지도 읽을 수 있게 됐다.

안상은 할머니(70)는 2012년까지 한글도 숫자도 읽지 못했다. 하지만 고덕평생학습관에서 초등학력 인정 문해교육 프로그램을 받으며 달라졌다. 혼자 살게 되자 까막눈인 게 너무 불편했다. 자신이 못 배웠기에 자식들 공부는 더 열심히 시켰다. “애들 잘 키웠으면 됐지, 이 나이에 무슨 공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자식들이 장성해 해외로 나가니 문제였다. 외로운 건 둘째 치고 일상생활을 하기 어려웠다.

안 할머니는 고덕평생학습관에서 줄곧 반장을 하는 등 모범생이었다. 지난해에는 ‘서울평생학습축제 도전 문해 골든벨’에 참가해 10등 안에 들었다. 글씨를 배우면서 배우지 못한 걸 감추려 백화점에서 비싼 옷을 사 입곤 했던 자신을 반성하게 됐다. 안 할머니는 3월에 중등학력 인정 프로그램도 들을 예정이다. 기회가 된다면 대학에도 진학해 글을 쓰고 싶다.

이매자 할머니(73)는 2013년부터 매주 화·목·금요일에 푸른어머니학교 야간반에 나갔다. 집안 살림 때문에 칠십이 넘어 겨우 시작한 공부인 데도 낮에는 손자손녀를 돌보느라 시간을 내기 어려웠다. 하지만 이 할머니는 “학교에 간다”며 가방을 매고 집을 나서는 시간이 제일 즐거웠다.

손가락 관절염 때문에 글을 쓰는 게 힘들다. 글씨체가 마음에 안 든다. 하지만 이 할머니는 글을 쓸 수 있다는 게 마냥 자랑스럽고 행복하다. 때문에 특별반인 야간 시 쓰기반에도 열성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김광자 할머니(78)는 어머니를 잃고 우울증이 심해 집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불면증에도 시달렸다. 하지만 양원주부학교에서 친구들 만나고 배우는 게 즐거우니 잠도 잘 자게 됐다. 한문 공부가 특히 좋아 중등과정 학생이 따곤 하는 급수도 땄다. 김 할머니는 “죽기 전까지 학교에 나와서 공부하고 싶다”고 말했다.

서울시교육청은 23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시교육연수원에서 ‘2015학년도 초·중 학력인정 문해교육’ 이수자 556명(초등 485명, 중등 71명)의 졸업식을 열었다. 졸업자 중 44.5%는 70대, 36.7%는 60대인 것을 비롯해 99%가 50~80대다. 김 할머니는 이날 교육감 표창장도 받았다.

학력인정 문해교육은 기초학력이 부족해 일상생활이나 직업생활에서 불편을 느끼는 사람을 대상으로 실시한다. 교육감이 설치·지정한 프로그램을 이수하면 초등학교나 중학교 졸업학력을 인정받는다. 서울시교육청은 2011년 전국 교육청 중 최초로 학력인정 문해교육을 시작했다. 현재 서울에서 2260명이 관련 교육을 받고 있다.

최예나 기자 ye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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