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 ‘∼요’ 쓸수있게… 선후임병 원활한 의사소통 나서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2월 24일 03시 00분


‘∼다, 나, 까’ 말투 대신… 金병장님, 식사하시지 말입니다 X
金병장님, 식사하세요 O

갓 자대에 배치된 김 이병. 병영식당에서 이 일병에게 무심코 “식사 맛있게 하세요”라고 말했다가 봉변을 당했다. 이 일병은 “뭐? 요?”로 시작해 “여기가 사회로 보이냐? 군 생활 편하지?”라고 한참 다그친 뒤 ‘다·나·까’ 중 하나로 말을 끝맺으라고 지시했다. 김 이병은 곧바로 말투를 바꿨다. “식사 맛있게 하시지 말입니다.”

군대에 갔다 온 남성이라면 한 번쯤 겪어봤을 법한 일이다. 신병훈련소에서 종결어미 ‘다·나·까’ 사용이 익숙하지 않아 ‘요’를 남발했다가 이른바 답답한 사람이라는 뜻의 ‘고문관’이 된 사례도 허다하다. 하지만 앞으로는 ‘요’ 때문에 혼이 나지 않아도 될 것으로 보인다.

23일 복수의 군 소식통에 따르면 국방부는 최근 병영문화 혁신책의 하나로 선임자에게 ‘요’를 사용할 수 있게 하는 ‘다·나·까 말투 개선 지침’을 만들어 일선 부대에 보냈다. 신병훈련소부터 강요되는 ‘다·나·까’ 말투가 신병들의 병영생활 적응을 어렵게 하고 선후임 간 자연스러운 의사소통을 막는다고 본 것이다. ‘다·나·까’ 강요는 “그렇지 말입니다”처럼 말끝마다 ‘말입니다’라는 정체불명의 표현을 남발하게 만드는 원인이기도 하다.

군 소식통은 “‘요’는 물론이고 정중한 높임말인 ‘하십시오’도 사용하지 못하게 해 선후임 간 효율적인 의사소통이 어려운 상황”이라며 “이런 ‘다·나·까’ 강요가 마치 선임에게 지시·명령권이 있는 것처럼 잘못 인식돼 가혹행위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육군 규정에는 “분대장을 제외한 병사 간에는 명령, 지시, 간섭을 금지한다”고 돼 있다.

‘다·나·까’ 말투가 군의 공식적인 말투처럼 인식돼 있지만 정작 육해공군 규정에는 ‘다·나·까’를 사용하라는 내용이 없다. “군인의 언어 사용은 표준말을 원칙으로 하고 간단·명료해야 한다”(육군 규정)는 조항 정도가 있을 뿐이다.

국방부는 명령 하달이나 교육, 훈련 등 공식적인 경우에 한해 종결어미로 ‘다’ ‘까’ ‘오’를 쓰되 생활관 등에서는 ‘요’를 사용해 자연스럽게 대화할 수 있도록 했다. 후임이 선임에게 “안녕히 주무시지 말입니다” 대신 “안녕히 주무세요” “주무십시오”라고 해도 된다는 것이다.

후임에게 강요되는 ‘압존법’ 사용 금지 지침도 내렸다. 압존법은 말을 듣는 사람이 말에 포함된 주체보다 윗사람일 경우 이 주체를 높이지 않는 것이다. 압존법에 따르면 손자는 할아버지에게 “아버지께서 오셨습니다”가 아니라 “아버지가 왔습니다”라고 해야 한다. 국립국어원에 따르면 이런 압존법은 가족이나 사제(師弟) 간에 사용되고 부대나 직장에선 적용되지 않는다. 따라서 김 일병은 이 병장에게 “한 상병님 휴가 가셨습니다”라고 하면 된다. 그러나 군내에서는 여전히 잘못된 압존법이 강요되고 있다. 갓 전입해 온 이병에게 압존법을 제대로 쓰게 하겠다며 선임 30∼40명의 ‘서열 암기’를 강요하는 병폐도 발생한다. 군 소식통은 “압존법을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얼차려 등 제재를 하지 않으면 신병들은 좀 더 자연스럽게 선임들의 서열을 익히는 등 고충이 많이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국방부#말투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