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 퇴폐찻집에 출근하는 공무원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2월 25일 03시 00분


강북구 단속반 “뿌리 뽑힐 때까지”

17일 밤 서울 강북구의 한 업소에서 구청 직원과 경찰관이 합동 단속을 하고 있다. 황태호 기자 taeho@donga.com
17일 밤 서울 강북구의 한 업소에서 구청 직원과 경찰관이 합동 단속을 하고 있다. 황태호 기자 taeho@donga.com
17일 오후 11시. 서울 강북구 한천로 수송초등학교 근처 주택가에 검은색 승합차 한 대가 멈췄다. 잠시 후 승합차 문이 열리고 남성 6명이 차례로 내렸다. 이들은 상호가 인쇄된 간판과 ‘일반음식점’이라는 표기만 적어놓고 시트지로 외벽 전체를 가린 한 업소 앞에 섰다.

남성들은 곧 점포 안으로 들어섰다. 안에는 흐릿한 붉은 조명만 켜져 있었다. 추운 바깥 날씨와 어울리지 않게 짧은 치마를 입은 40대 여성이 당황한 기색으로 이들을 맞았다. “계속 이렇게 귀찮게 하는데 장사하실 거예요?” 한 남성이 말하자 여성은 “죄송하다”는 말을 반복하며 “곧 정리하겠다”고 약속했다.

서울 강북구 일대 주택가에선 이런 모습을 자주 목격할 수 있다. 이들은 임재업 강북구 유해환경개선 태스크포스(TF)팀장 및 팀원 3명과 강북경찰서 경찰관 2명, 성북교육지원청 직원 1명으로 구성된 합동단속반이다. 단속반은 매주 1회 이상 이렇게 야간 단속에 나선다. 대상은 일반음식점으로 신고하고 여종업원들이 불법 접객행위를 하는 소규모 ‘퇴폐 찻집’. 식품위생법에 따라 일반음식점에서는 종업원이 동석해 손님과 함께 술을 마시는 등 접객행위가 금지돼 있다.

임 팀장은 “기존 유흥업소에서 일했던 여성들이 소규모로 전월세를 얻어 하는 가게가 적지 않다”며 “손님 한 팀만 들어가면 문을 잠근 채 바가지를 씌우는 곳이 많다”고 설명했다. 일부 업소에서는 성매매까지 벌어지기도 한다.

강북구 내 퇴폐 찻집은 2013년 115개에서 2015년 초 170여 개로 빠르게 늘어났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런 업소들이 임차료가 저렴한 주택가 골목에 문을 열다 보니 대부분 초중고교생들의 통학로에 몰려든 것이다. 한 여자중학교 근처에는 30개 업소가 밀집하기도 했다. 중학생 황모 양(15)은 “그런 가게가 워낙 많이 보여 친구들끼리 뭐하는 곳이냐며 서로 묻기도 한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구청이 마련한 학부모 간담회 때마다 “학교 앞 유해업소를 좀 없애 달라”는 민원이 빗발쳤다. 일회성 단속으론 뿌리 뽑기 어렵다고 본 강북구는 지난해 5월 퇴폐 찻집 단속을 위한 전담 TF를 꾸렸다. 지역 유관기관과 학부모, 학생, 주민들로 구성된 범구민 협의회도 꾸렸다.

이어 유례없는 환경 개선활동이 시작됐다. 매주 합동단속과 함께 “아이들을 위해 유해업소에 임대를 주지 말아 달라”는 건물주 설득 작업을 병행했다. 퇴폐 찻집이 한 곳이라도 있는 골목에는 어김없이 ‘불법 유해업소를 이용하지 말자’는 내용의 현수막을 달았다. 구청 민원실에선 일반음식점 영업신고 접수 때부터 강력 단속과 퇴출 의지를 홍보하며 신규 발생을 막았다. 여종업원들을 대상으로 일자리 알선 등의 지원책도 병행했다. 그 결과 지난 한 해 동안 170여 개 업소 중 47곳(28%)이 문을 닫거나 업종을 바꿨다.

박겸수 구청장은 “남은 곳도 건물주 50명이 재계약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는 등 큰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며 “시일이 걸리더라도 반드시 동네 유해업소를 뿌리 뽑겠다”고 말했다.

황태호 기자 taeho@donga.com
#퇴폐찻집#일반음식점#유흥업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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