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초등 1, 2학년 영어수업 금지가 옳다는 비현실적 헌재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2월 26일 00시 00분


헌법재판소는 어제 초등학교 1, 2학년에서 영어 과목 개설을 금지한 교육과학기술부 장관 고시는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결정했다. 헌재는 “고시는 영어 과목에 대한 사교육의 지나친 과열을 막기 위한다는 정당한 목적이 있고 초등학교 3∼6학년에게는 영어 과목을 인정하고 있어 과도한 기본권 침해라고 보기 어렵다”고 결정 이유를 밝혔다.

2013년 교육부는 초등교육과정 고시에 1, 2학년 과목 중 영어가 포함되지 않는다며 1, 2학년 대상으로 영어 교육을 하는 서울 영훈초 등에 2014년부터 수업을 중단하라는 공문을 보냈다. 이에 영훈초 재학생과 학부모들은 학생의 학습권과 학부모의 교육선택권을 침해당했다며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재판관 9명 전원의 일치된 의견으로 내려진 헌재 결정이지만 초등학교 1, 2학년 영어 과목 금지가 사교육 과열을 막을 수 있는 적절한 방법이라는 판단은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 적잖은 학부모들이 이미 유치원 때부터 자녀에게 영어 교육을 시키고 있다. 초등학교 3학년이 되면 다시 영어를 배운다. 초등학교 1, 2학년에서만 영어 교육을 금지하면 학교 밖에서 영어 교육을 시키게 된다.

초등 1, 2학년에서 영어 교육을 하는 곳은 대부분 사립학교다. 공립초등학교는 수업료를 한 푼도 내지 않지만 사립초등학교는 분기당 85만∼170만 원의 수업료를 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녀를 사립초등학교에 보내는 학부모들은 공립초등학교보다 영어 교육을 훨씬 잘 받을 수 있고 사교육으로 영어 교육을 시키는 것보다는 돈이 덜 든다고 보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1, 2학년은 공교육 체계하에서 한글을 처음 접하는 시기로 이때 영어를 배우면 한국어 발달에 장애가 올 수 있다는 헌재의 판단도 전제부터 비현실적이다. 오늘날 초등학교 1, 2학년에서 한글을 처음 접하는 학생은 거의 없다. 외국에서 이중언어(bilingual) 초등학교가 많은 걸 보면 두 가지 언어를 동시에 배운다고 언어 장애가 오는 것 같지도 않다. 학부모의 선택에 맡겨서 더 잘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왜 국가가 일률적으로 규제하려는 것인지 납득하기 어렵다.
#초등학교#영어#교육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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