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태훈]아동보호 최강국, 미국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2월 26일 03시 00분


이태훈 사회부 차장
이태훈 사회부 차장
선진국과 후진국을 가르는 기준이 여럿 있지만 어린이를 보호하는 노력을 보면 나라의 수준을 금방 알 수 있다. 세계 최강대국 미국은 극성스러울 만큼 어린이 보호에 각별한 신경을 쓴다. 한국은 아이가 학교 갈 때 걷든, 차를 타든 등하교하는 방식을 학교에 보고해야 한다는 생각 자체가 없으나 미국에서 이랬다가는 큰일 난다.

미국 초등학교에 아이를 입학시키러 가면 등하교 방법부터 정한다. 부모가 아이 손을 잡고 걸려서 할지, 자가용으로 태워다 줄지, 스쿨버스를 이용할지 등 3가지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라고 한다. 그 다음에는 이를 잘 지켜야 하는 의무가 따른다. 며칠 해보다가 불편하다고 등하교 방식을 마음대로 바꾸면 학교에서 즉시 부모에게 연락해 제지한다. 학교에 와서 등하교 방법을 공식적으로 변경하든지, 애초 약속한 대로 아이를 등하교시키라고 경고한다.

한국은 초등학교 수업이 끝나면 아이들이 각자 집이나 학원으로 어지럽게 흩어진다. 하지만 미국에서 이런 풍경은 상상할 수 없다. 부모와 걸어서 등하교하는 경우 사전에 약속한 보호자가 데리러 오지 않으면 절대 아이를 인계하지 않는다. 자가용에 태워 하교할 때도 보호자임을 증명하는 용도로 학교에서 배부한 번호판을 차량 앞 유리창 백미러에 매달고 오지 않으면 부모라 해도 아이를 데려갈 수 없다. 안전이 100% 확인될 때까지 아이들을 안전한 학교 건물 밖으로 한 발짝도 내보내지 않는다.

미군이 ‘단 한 명의 병사도 적진에 남겨두지 않는다(Leave no man behind)’는 슬로건을 내걸고 참전용사들의 유해를 발굴해 실종자를 끝까지 송환하는 것처럼, 미국 학교는 학생 한 명 한 명이 안전하게 귀가하도록 아동 보호 시스템을 완벽하게 구축하고 있는 것이다.

스쿨버스를 타는 초등학교 1학년은 더 특별히 보호한다. 부모가 정류장에 마중을 나오지 않으면 스쿨버스 운전사는 학생을 내려주지 않고 다음 정류장으로 이동하면서 부모를 휴대전화로 바로 호출한다. “마중 안 나오고 어디 갔느냐”며 꾸짖는 말도 잊지 않는다. 온 동네를 빙빙 돌면서 다른 학생들을 모두 내려주고 원래 정류장으로 돌아온 스쿨버스는 보호자를 확인하고서야 아이를 하차시킨다. 보호자가 있든 없든 학원버스가 아이들을 내려주고 가버리는 우리와는 천양지차다.

스쿨버스는 미국인의 어린이 보호를 대표하는 상징이다. 등하교 때 스쿨버스가 아이들을 태우기 위해 STOP 사인을 번쩍이며 도로에 갑자기 멈추면 뒤따라 달리던 차들이 한순간에 멈춰 선다. 스쿨버스와 뒤차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이 아이들의 승하차가 끝날 때까지 질서정연하게 기다린다. 스쿨버스가 정차하는 곳이 곧 신호등이나 마찬가지여서 미국에서는 스쿨버스를 ‘움직이는 신호등’이라 부른다. 가슴 뭉클한 이 광경을 보고 있노라면 선진 문명국가의 국민의식이 어느 정도인지 몸으로 느낄 수 있다.

아이들의 안전이 사방에서 위협받고 있는 우리 현실에서 어린이 보호를 위한 미국인의 지극한 배려를 보면 그저 부럽고 부끄러울 따름이다.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를 넘보고 있다지만, 한국에서는 죄 없는 아이들이 어른들의 부주의로 통학차량에 치여 숨지고 부모한테서 맞아 죽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이제 우리도 내 가족만 생각하는 가족주의의 벽을 허물어야 한다. 내 자식이 소중한 만큼 남의 아들딸, 손자 손녀도 아껴주는 어른들의 성숙한 공동체 의식이 절실하다. 아이들은 우리의 미래다. 미래를 짊어질 아이들이 안전하지 못하면 우리의 미래도 위태로울 수밖에 없다. 대책도 중요하지만 패러다임부터 바꿔야 한다.

이태훈 사회부 차장 jefflee@donga.com
#아동보호#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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