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향 사태’ 전부 허위로 결론…직원 호소문은 대국민 사기극?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3월 3일 12시 59분


2014년 12월 박현정 전 대표의 인권유린을 고발하는 직원 일부의 호소문으로 시작된 ‘서울시향 사태’가 1년여 만에 경찰 조사를 통해 모두 허위인 것으로 드러났다. 또 정명훈 전 서울시향 예술감독의 아내인 구모 씨가 “인권침해 이슈를 강조하라”는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직원에게 보내는 등 적극적으로 범행을 지시한 정황도 포착됐다.

서울지방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는 ‘서울시향 박현정 대표 퇴진을 위한 호소문’을 작성해 서울시향 이사, 서울시 의원 등에 발송하는데 가담한 혐의(정보통신망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위반)로 서울시향 직원 백모 씨(40·여) 등 10명을 불구속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한다고 3일 밝혔다. 또 정명훈 전 예술감독의 비서인 백 씨에게 호소문을 유포하도록 지시한 정황이 포착된 구 씨를 같은 혐의로 기소중지 의견으로 송치할 예정이다.

이날 경찰은 수사 브리핑을 통해 ‘서울시향을 지키고 싶은 직원 17명 일동’ 명의로 발표한 호소문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경찰 조사 결과 직원 17명 중 7명은 모두 가공인물로 드러났다. 경찰 관계자는 “수사 초기 7명이 부풀려진 사실을 확인하고 호소문 내용에 대한 합리적인 의심을 갖게 됐다”고 밝혔다.

서울시향 직원인 피의자 곽모 씨(40)는 2013년 9월 예술의 전당과 가진 회식 자리에서 박 전 대표가 과도한 음주 후 자신의 넥타이를 손으로 잡고 얼굴을 마주보고 왼손 바닥으로 주요 부위를 접촉 시도했다고 경찰에 주장했다. 하지만 경찰은 “회식 참석자 가운데 일부 피의자 이외 나머지 참석자들은 성추행과 같은 상황이 전혀 없었을 뿐만 아니라 화기애애하게 회식이 마무리 됐다는 일관적 진술이 있다”고 밝혔다. 또 당시 자리에 동석한 피의자는 회식 자리가 열린 방문 입구에서 이를 목격했다고 진술했지만 경찰 조사 결과 방문 입구에선 내부가 보이지 않았다.

서울시향 직원들은 박 전 대표가 “”너는 미니스커트 입고 니 다리로라도 나가서 음반팔면 좋겠다“, ”마담하면 잘 할 것 같아. 옆에서 아가씨 하구“ 등 성희롱을 일삼았다고 주장했다. 또 ”사손(회사 손해)이 발생하면 월급에서 까겠어. 니들 월급으로 못 갚으니 장기라도 팔아야지 뭐. 니들 몸 보호하려면 일 제대로 해“라고 박 전 대표가 수차례 막말한 것으로 호소문을 작성했다. 경찰 관계자는 ”피의자 10명이 박 전 대표로 들었다던 폭언과 성희롱 발언을 들었다는 일시와 장소가 크게 다르고, 일부는 동료 주장만 믿고 투서 작성에 참여했다고 진술했다“고 밝혔다.

당초 서울시향 직원은 박 전 대표의 성희롱과 막말 발언이 담긴 녹취 파일이 있다고 주장했지만 ”(정명훈) 감독이 ‘굿 휴먼 비잉’이라고 깝죽거릴수가 있어“란 발언만 담긴 녹취 파일만 경찰에 제출했다.

박 전 대표의 인사전횡 관련 내용도 허위로 드러났다. 투서를 쓴 서울시향 직원들은 박 전 대표가 △특정인을 인사위원회 의결 없이 승진시키고 △지인의 제자를 비공개 채용했으며 △무보수 자원봉사자인 지인의 자녀에게 보수를 지급했다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경찰이 인사담당자 조사 및 인사자료를 검토한 결과, 인사위의 의결이 없었다는 내용은 실제 인사위의 심의를 거쳐 이뤄져 절차상의 하자가 없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지인의 제자를 비공개 채용했다는 내용도 박 전 대표의 과실이 아니었다. 경찰 관계자는 ”인사담당자가 이전 공무직 공채에서 아깝게 탈락했던 지원자를 공고 없이 예전 지원서류로 갈음해 계약직으로 채용한 것“이라고 말했다. 무보수 자원봉사자도 보수가 지급된 정황이 없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 관계자는 ”투서에 피의자 백 씨 주도로 정리된 인사전횡 부분이 법령과 절차를 확실히 따지지 않은 내용들이었다“고 말했다.

경찰은 정 전 예술감독의 아내 구 씨가 백 씨에게 투서를 유포하도록 지시한 정황이 있는 600여 건의 문자메시지도 확인했다. 경찰 등에 따르면 구 씨와 백 씨가 주고 받은 문자메시지에는 ”박 대표를 사회적으로 매장시켜라“, ”꼭 승리하겠습니다“ 등의 내용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또 ”현대사회에선 인권이슈가 중요하다. 인권침해 이슈만 강조하라. 절대 잊지 마라“라는 내용의 문자메시지도 있던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 관계자는 ”백 씨의 휴대전화를 압수하고 삭제한 문자메시지 600건을 복원했다“며 ”백 씨가 박 전 대표의 전횡으로 힘들다고 호소하는 내용은 없고 박 전 대표의 퇴진 문제 등을 지시하는 내용만 담겨 있다“고 밝혔다.

현재 미국 국적인 구 씨는 프랑스에 거주 중이다. 경찰이 4차례 출석요구를 했지만 구 씨는 응하지 않았다. 경찰 관계자는 ”문자메시지로 주고 받았기에 정확한 의미를 확인하기 위해선 구 씨의 수사가 꼭 필요했지만 응하지 않았다“며 ”정황이 확인되면 범행교사 혐의가 추가될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 수사 결과에 대해 박 전 대표는 억울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2014년 12월 이후 사회적으로 매장됐다. 15개월동안 무덤 안에 매장됐다가 다시 꺼내진 기분이다“고 털어놨다. 박 전 대표는 ”직원들만 생각하면 사람이 무섭다“며 ”반성도 없고 미안함도 없는 그들을 보면서 용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사건 개입 정황이 드러난 구 씨에 대해서는 ”구 씨가 꼭 한국에 왔어야 했다. 선의로 직원을 도와줬다고 생각한다면 경찰 조사를 받아야 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박훈상기자 tigermas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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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2월 29일 서울시립교향악단 박현정 대표가 서울 시립교향악단 5층 연습실에서 사퇴를 발표할 당시의 모습. 동아일보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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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2월 10일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서울시립교향악단 연습실에서 단원들에게 박현정 대표의 막말 논란 등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설명 중인 정명훈 예술감독.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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