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쟁의 선언후 회사 되살아나… 금속노조원 지금도 투쟁 선동”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3월 7일 03시 00분


기업별 노조 인정 ‘1901일 전쟁’… 발레오전장 강기봉 사장-정홍섭 노조위원장

강기봉 발레오전장시스템스코리아 사장(왼쪽)과 정홍섭 노조위원장이 3일 경북 경주시 황성동 공장에서 교류발전기를 함께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지난달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발레오전장의 기업별 노조 전환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경주=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강기봉 발레오전장시스템스코리아 사장(왼쪽)과 정홍섭 노조위원장이 3일 경북 경주시 황성동 공장에서 교류발전기를 함께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지난달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발레오전장의 기업별 노조 전환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경주=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 경북 경주시 황성동 19. 분명 회사 주소는 맞는데, 눈앞에 보이는 것은 하얀색 콘크리트 벽과 벽 한쪽에 난 쪽문뿐이다. 굳게 닫힌 쪽문 안쪽에서 경비원이 말을 건넸다. “여기 문은 폐쇄됐어요. 돌아서 북문으로 들어오세요.” 3일 발레오전장시스템스코리아(발레오전장)를 찾았다. 지난달 19일 1901일간의 송사(訟事)를 끝낸 기업이다. 그런데 이 회사에는 정문이 없었다. “원래 기업들은 재수 없다고 해서 북쪽으로는 문을 안 내요. 다 남쪽으로 문을 냅니다. 그런데 2013년 금속노조가 정문을 두 번이나 부숴 버린 뒤 아예 콘크리트로 막아버렸습니다. 지금은 북문을 정문으로 쓰고 있죠.” 발레오전장 강기봉 사장이 전했다. 》

공장으로 들어서자 불법 파업과 이에 따른 99일간의 직장폐쇄, 그리고 6년 동안 이어진 송사의 후유증은 전혀 느낄 수 없었다. 직원들은 차분히 일에 집중하고 있었다. 다만 건물 입구에 ‘어떠한 상황에서도 최고의 품질과 완벽한 납기를 지키겠다’는 노조위원장 서약서, 공장 모니터에 나오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뉴스들이 당시 상황을 유추하게 했다.

지난달 19일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금속노조 발레오만도지회(산별 노조)가 2010년 12월 6일 발레오경주노조(기업별 노조)를 상대로 “금속노조를 탈퇴하고 기업별 노조로 전환한 것은 무효”라고 제기한 소송을 파기 환송했다. 1심과 2심에서 법원은 “발레오전장 지회는 독립된 노조가 아니기 때문에 조합원 결의만으로는 탈퇴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산별노조 하부조직이 독자적인 규약과 집행기관을 갖고 독립적인 활동을 하는 경우 기업별 노조로 전환할 수 있다”고 인정했다.

발레오전장은 자동차에 들어가는 시동모터와 교류발전기를 생산하는 회사다. 현대·기아자동차, 도요타, 제너럴모터스(GM), 닛산 등을 고객사로 두고 있다. 1986년 만도기계 경주공장으로 시작해 1999년 프랑스 발레오그룹이 인수했다.

○ 금속노조의 ‘표본’이었던 발레오전장

2009년 3월 강 사장 취임 당시 발레오전장은 직원들이 모두 정규직이었다. 경비직과 환경미화원도 7200만∼7600만 원씩 연봉을 받아갔다. 근로자가 사고로 일하지 못하게 되면 배우자와 자녀가 고용을 승계했다. 중학교는 무상교육인데도 학자금이 나갔다. 제사 휴가도 있었다. 창립 이래 단 한 해도 파업을 빼먹은 적이 없었다. 임금은 매년 올랐다. 2006년엔 파업 시간만 111시간이나 됐다.

당시 금속노조 발레오만도지회 대의원 대표로 활동하던 정홍섭 현 발레오경주노조 노조위원장은 “당시 발레오전장은 금속노조의 ‘표본’이었다”며 “그 와중에 직원들은 ‘돈 많이 받으니 좋긴 한데 이러다 우리 회사가 망하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감을 항상 안고 살았다”고 말했다.

회사는 2008년 18억 원, 2009년 35억 원의 순손실을 냈다. 2009년 당시 발레오가 만도기계 경주공장을 인수한 이후 투자금과 회수금을 계산하면 총 1470억 원이 순손실이었다. 발레오는 공장을 태국으로 이전하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회사가 문을 닫으면 900명 가까운 직원과 협력업체 직원 2000여 명이 거리에 나앉을 판이었다. 강 사장은 “청산만은 막자”며 비용 절감에 나섰다. 2010년 2월 4일 경비원을 아웃소싱하기로 하고, 경비원 5명을 생산직으로 전환 배치했다. 이에 반발한 금속노조 발레오만도지회는 불법 집단행동에 돌입했다.

“일명 ‘고품질 활동’이라고 하는 태업이 대표적입니다. 불량률 줄인답시고 제품을 이리 돌리고, 저리 돌리고, 또 보고 하는 겁니다. 그렇게 생산량을 30% 줄였죠.”(정 위원장)

특잔업 거부와 파업도 병행했다. 생산직의 빈자리를 사무직과 일용직들이 메우자 금속노조 발레오만도지회는 조립라인 배선을 잘라 버렸다. 이로 인해 납품 지연이 생기면 시간당 17억 원을 손해배상금으로 물어야 했다.

○ 직장폐쇄, 기적은 시작됐다

그해 2월 16일, 결국 강 사장은 직장폐쇄를 선택했다. 그는 “사무직 직원들과 회사의 사정에 공감해준 100여 명의 생산직 직원이 회사에서 숙식하며 공장을 돌렸다”며 “직장폐쇄 기간 내내 회사는 거대한 기숙사였다”고 회상했다.

금속노조 발레오만도지회와 금속노조 경주지부 측은 회사 정문 앞에 천막을 치고 소화기를 뿌려댔다. 허수아비를 가져와 강 사장 화형식도 열었다. 금속노조를 ‘배신’하고 공장으로 돌아간 조합원에게는 집에 찾아가 가족들을 협박하기도 했다. 도요타 측이 공장을 방문했을 때는 ‘일용직이 만든 제품은 품질이 확실하지 않다’는 일본어 현수막을 붙였다.

그러나 기적은 그때 시작됐다. 4월 발레오전장은 납기를 맞추는 것은 물론이고 월 사상 최대 매출을 기록했다. 강 사장은 “노조가 파업을 밥 먹듯이 하다 보니 대신 일하는 사무직도 이미 숙련직이었다”며 “기능직보다 더 열심히 일하니 사상 최대 매출이 나온 것”이라고 말했다.

파업하던 조합원들은 흔들리기 시작했지만 노조 집행부는 요지부동이었다. 정 위원장은 “당시 노조 집행부에 가서 ‘이러면 다 죽는다’ 했더니 집행부가 ‘질긴 놈이 이긴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그는 “잘못하다가는 언제 회사가 청산될지 모른다는 심정에 조조모(조합원을 위한 조합원들의 모임)를 결성했다”고 덧붙였다. 6월 7일 금속노조를 탈퇴하고 기업별 노조를 설립했다. 노조원 601명 중 550명이 참석했고, 이 중 536명(재적 대비 찬성률 89.2%)이 찬성했다.

순이익의 25%를 성과급으로

기업별 노조는 2010년 7월 ‘항구적 무쟁의’를 선언했다. 그리고 임·단협과 관련한 모든 교섭권을 회사에 일임했다. 임금피크제도 도입했다. 정 위원장은 ‘최고의 복지는 고용 안정’이라는 슬로건을 걸었다. 강 사장은 “회사 당기순이익의 25%를 개인의 성과에 따라 차등을 둬 성과급으로 주겠다”는 내용을 단체협약에 명문화했다. 강 사장은 “노사가 임금은 직원들이 쟁취하는 것이 아니라 원래 자신의 것을 노력해서 가져가는 것이라는 신뢰만 있다면 싸울 일이 없다”고 말했다.

불법 파업, 직장폐쇄, 폭력 사태 등을 모두 겪은 그해 발레오전장은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발레오전장이 지급한 직원 1인당 성과급은 2010년 1060만 원에서 2014년 1532만 원으로 늘었다. 같은 기간 기능직 평균 연봉은 6192만 원에서 8212만 원으로 증가했다. 발레오로부터 매년 200억 원 안팎의 추가 투자도 받았다. 지난해 12월 자동주차 시스템 장비, 레이더 장치, 사각지대 검출 장치로 생산 품목을 늘렸다. 2010년 이후 현재까지 청년 직원 100여 명을 뽑았다.

이 같은 성과를 바탕으로 발레오전장은 2012년 도요타와 납품 계약을 맺었다. 미니밴 ‘알파드’와 픽업트럭 ‘비고’에 들어가는 발전기와 시동모터를 2015∼2019년 4년간 1000억 원어치 납품하는 내용이었다.

2014년엔 정기상여금(기본급의 700%)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하기로 했다.

○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대법원 판결이 나왔지만 아직 금속노조와의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금속노조원들은 2013년부터 매일 아침 대형 트럭을 회사 문 앞에 대놓고 납품 물량이 나가지 못하게 막고 있다. 그래서 발레오전장은 일부러 이른 새벽에 완성품을 다 빼낸다. 판결 이후에도 금속노조원들은 수시로 직원들에게 ‘우리는 이길 수 있다, 강화 투쟁을 벌일 것이다’란 문자를 보낸다.

이 판결 외에도 현재 금속노조와 크고 작은 소송 20여 건이 진행되고 있다. 현재 발레오전장의 생산직 직원 약 500명 중 410명은 기업별 노조, 70명은 금속노조 소속이다. 이 밖에 29명의 해고자가 더 있다.

강 사장, 정 위원장과 나란히 앉아 인터뷰를 진행하던 중 금속노조가 회사 건물에 설치한 확성기에서 노래가 나오기 시작했다. 이 확성기는 매일 5번 정해진 시간에 울린다. 강 사장은 “손님이 오면 노래를 더 크게 튼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인터뷰가 끝날 즈음 정 위원장은 기자에게 “후련하다기보다 가슴이 답답하다”고 했다.

“왜 이 시골에 있는 작은 공장, 인원 800명인 회사가 15만 금속노조와 외롭게 싸워야 했는지 지금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왜 우리가 총대를 메야 했는지. 금속노조한테 맞으면서도 참아야 했던 세월이 가슴에 멍울졌습니다. 금속노조를 상대로 기업별 노조가 이길 수 있다는 건 꿈같은 일이었습니다.”

현재 상신브레이크 등 10여 개 기업이 금속노조와 기업별 노조 전환 가능 여부를 놓고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강 사장은 “7년간 금속노조의 집요한 방해 속에서도 노사가 힘을 합친다면 죽어가던 회사도 살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며 “시골의 조그만 회사가 목숨을 내놓고 이뤄낸 개혁을 국내 제조업이 벤치마킹해 노동개혁의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길 바란다”고 말했다.

경주=강유현 기자 yhkang@donga.com
#금속노조#노조#발레오전장#강기봉#정홍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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