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제약회사 매출 1위인 한미약품의 관계사 한미IT가 중소 정보기술(IT) 벤처기업과 분쟁을 벌이고 있다. 벤처기업에 제품 개발을 의뢰하고 1억 원을 미리 지급했는데 최종 구매 계약 단계에서 조건이 안 맞아 계약이 성사되지 않자 돈을 돌려 달라고 한 것이 발단이 됐다. 벤처기업 측은 한미IT가 자신들이 독자 개발한 제품의 소유권까지 넘보고 있다는 의혹도 제기했다.
약품 관리에 쓰이는 전자태그(RFID) 리더기 개발이 필요했던 한미IT는 RFID 리더기 개발업체 네톰과 2013년 1월부터 사업 협력방안을 논의했다. RFID는 전자태그 안에 제품 정보를 담아 리더기를 이용해 판독, 관리할 수 있는 무선인식 기술이다.
두 회사는 같은 해 5월 ‘사업 협력 및 공동 사업에 대한 업무협약서’를 체결했다. 한미IT는 1억 원을 선지급했고, 네톰은 본격적으로 제품 개발에 들어갔다. 추후 개발이 끝나고 구매 계약을 맺으면 이 1억 원은 대금에서 제하는 조건이었다.
네톰은 1억 원을 개발비, 인건비 등으로 모두 소진한 끝에 RFID 리더기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한미IT의 눈높이를 맞출 수는 없었다. 네톰은 그 대신 자사의 다른 제품을 납품하겠다고 했지만 이마저 틀어졌다.
결국 한미IT는 2014년 8월 네톰에 선급금 1억 원을 전액 반환할 것을 요구했고, 지난해 1월에는 선급금 반환 소송을 서울중앙지법에 냈다. “선급금 사용은 구매 계약이 체결된 제품 개발에 국한되는데, 네톰이 임의로 선급금을 사용했으니 1억 원을 전액 반환해야 한다”는 논리였다.
양측이 맺은 업무협약서에는 ‘기간 내 제품 개발이 완료되지 않을 경우, 개발 수행이 어렵고 불성실하다고 판단되면 선급금 반환을 요청할 수 있다. 심의위원회를 구성해 개발 목표 달성 가능성과 진척도를 판단해 개발비 집행분을 정산해 환수 금액을 감액한다’고 돼 있다.
이에 대해 이건홍 네톰 대표는 “업무협약서 자체가 불공정 계약이었지만 한미약품그룹과 지속적으로 거래하기 위해서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1억 원은 이미 제품 개발비와 인건비로 모두 썼다. 업무협약서에 (제품)개발이 중단됐을 때 개발비 집행분은 환수액에서 감액하는 조항이 있으니 돌려줄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다.
네톰은 자사가 자체 개발한 RFID 리더기 신제품(스윙-U)의 지식소유권도 한미IT가 노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대표는 “스윙-U는 중소기업청의 지원을 받아 독자 개발한 제품으로, 한미IT와 만들려 했던 리더기와는 크기와 형태가 전혀 다르다”고 말했다. 이 밖에 네톰은 한미IT가 타 업체와 개발한 의류매장용 리더기 제품에 무단으로 자사의 기술을 사용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미IT는 이 주장을 반박했다. 한미IT 관계자는 “네톰 측이 급하게 돈이 필요하다고 해 선의로 1억 원을 빌려준 것”이라며 “개발비 등은 구매 계약이 이뤄진 개별 제품에 한해 인정되는 것이지 단순히 업무를 논의했다고 그 과정에 들어간 비용까지 내라는 건 억지”라고 말했다.
의류매장용 리더기 기술 도용 의혹에 대해서는 “네톰과 함께 회의를 하기는 했지만 구체적인 기술 지원은 받은 적이 없다. 기회를 주기 위해 견적서도 받아봤지만 대금을 너무 높게 책정해 계약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고 맞섰다. 스윙-U 공동소유권 주장에 대해선 “스윙-U는 네톰이 한미IT와의 협조 과정에서 의견을 반영해 개발한 결과물”이라며 “업무협약서상으로는 계약체결 취지 및 의무 이행을 위해 공동으로 개발한 제품의 지식재산권을 공동 보유할 수 있도록 돼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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