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소자 30% 치료 급해도 부실 조치… 합병증 위험 노출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3월 8일 03시 00분


[요양원에 방치된 노인들]<中>이해관계에 내몰린 요양원 환자

7일 오전 서울의 한 노인요양원에 70대 치매환자가 코에 영양관을 낀 채 잠들어 있다. 요양원에는 중증 치매·당뇨병 환자가 적지 않지만 이들에 대한 의료 서비스가 부실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7일 오전 서울의 한 노인요양원에 70대 치매환자가 코에 영양관을 낀 채 잠들어 있다. 요양원에는 중증 치매·당뇨병 환자가 적지 않지만 이들에 대한 의료 서비스가 부실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지난해 7월 중증 치매와 당뇨병을 앓고 있는 80대 어머니를 경기도의 한 노인요양원에 맡겼던 회사원 A 씨는 최근 병원에서 전화를 받고 깜짝 놀랐다. 낙상 사고를 당한 어머니의 왼쪽 다리 혈관이 오랫동안 막힌 채 방치돼 있었다는 얘기였다. 보통 의사가 가끔 요양원에 들러 건강 상태를 확인해 왔지만 한꺼번에 입소자 수십 명을 봐야 해서 형식적인 검사에 그쳤고, 겉으로 증상이 드러나지 않아 발견이 늦었을 것이라는 설명이었다. 하마터면 다리를 절단해야 할 뻔했다는 의사의 말에 A 씨는 분통을 터뜨렸다.

○ 요양원 노인 10명 중 3명은 병원 가야

노인요양원은 요양병원과 달리 치료보다는 재활과 돌봄에 초점을 둔 생활시설로, 노인요양시설과 공동생활가정을 합친 개념이다. 따라서 치료에 적용되는 건강보험이 아닌 장기요양보험이 적용된다. 의사가 상주하지 않고 요양원과 협약을 맺은 의료기관 소속 의사나 촉탁의가 한 달에 최소 두 차례씩 방문해 입소자들의 건강상태를 체크하도록 돼 있다. 하지만 이들 중 상당수는 A 씨의 어머니처럼 치매 당뇨병 뇌중풍(뇌졸중) 등 노인성 질환과 합병증 위험에 노출돼 있지만 적절한 진료를 받지 못하고 방치돼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7일 오전 서울의 한 노인요양원 10×호. 치매와 합병증 탓에 음식을 삼키지 못하는 70, 80대 노인 4명이 위까지 연결된 긴 튜브를 코에 꽂고 영양제를 주입받고 있었다. 가장 안쪽 침대에 누워 있던 정모 씨(88·여)에게 말을 걸자 고개를 가로저었다. “못 알아들으신다는 뜻이에요.” 이불을 정돈해주던 자원봉사자가 설명했다. 같은 병실에 있던 나머지 3명은 점심시간이 가까운데도 눈을 감은 채 꼼짝하지 않았다. 정 씨처럼 ‘최중증’에 속하는 1급 요양 노인 9명은 모두 이 요양원의 1층에 입소해 있다. 갑자기 상태가 나빠지면 1초라도 빨리 종합병원 응급실로 옮길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이처럼 병원에 입원해야 할 환자가 요양원으로 몰리는 것은 보호자와 요양원의 이해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요양원 이용료 중 환자의 본인 부담률은 20% 이하라 월 40만∼100만 원만 내면 되지만 요양병원은 본인 부담 입원비가 60만∼200만 원으로 비싼 편이다. 요양원 입장에서도 입소자의 중증도가 높을수록 장기요양보험 급여를 더 많이 받을 수 있어 질환이 중한 노인을 선호한다. 권순만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가 2013년 요양원 91곳에 입소한 노인 1368명의 건강 상태를 조사한 결과 30.3%가 지속적인 진료와 관찰이 필요한 환자였다. 요양원 입소자가 증상이 악화돼 응급실로 가거나 종합병원 등 급성기 병원에 입원하는 비율도 요양병원 환자보다 오히려 높았다.

○ 요양원 서비스 ‘극과 극’

장기요양보험제도가 시행된 2008년 전국 1700곳이었던 노인요양원은 2015년 말 현재 5083곳으로 3배 가까이로 늘었다. 하지만 본보가 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입수한 2013년 전국 노인요양원 현황(총 4639곳)에 따르면 우후죽순으로 생긴 요양원 중에는 함량 미달 시설을 갖춘 곳이 적지 않았으며 시설별로 이용자와 근무 인원 등에서 양극화가 심각했다.

이용자 수가 정원의 10%에도 미치지 못하는 곳은 72곳이었다. 충남 홍성군 H요양원은 정원이 60명이지만 시설을 이용하는 노인은 5명뿐이었다. 반면 서울 서초구 구립서초노인요양센터는 200명 정원에 무려 637명이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있었다. 직원 1명당 노인 수도 시설마다 차이가 컸다. 경기 수원시 N요양원은 근무자 25명이 노인 35명을 책임지고 있었지만 경기 부천시 E요양원에는 근무자 3명이 노인 15명을 돌보고 있었다.

이 같은 불균형은 노인 학대나 부실 관리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2014년 5월 서울 양천구의 한 요양원에선 요양보호사가 70대 치매 환자를 때려 요양원이 6개월간 업무정지 처분을 받았다. 지난해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요양원과 요양병원 788곳을 점검한 결과 19곳이 유통기한이 지난 식품을 보관하거나 청소용 세제를 식품과 함께 보관하는 등 식품위생법을 어겨 과태료 처분을 받았다. 건강보험공단과 식약처는 각각 요양보호사 대상 교육과 요양원 위생 점검을 강화할 방침이다.

○ 정부 “상반기 중 의료진 관리 강화”

전문가들은 일부 요양원에 중증 환자가 몰리고 이들에게 적절한 의료 서비스가 제공되지 않는 근본적 원인을 ‘낮은 진입 장벽’으로 꼽는다. 요양원은 사회복지사 2급 자격증만 있어도 세울 수 있고, 이 자격증은 온라인 강의만 이수해도 딸 수 있다. 전용호 인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인력 시설 규모 등 자격조건을 강화해야 부실한 요양원이 장기요양보험 재정을 갉아먹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보건당국이 촉탁의에 대한 데이터베이스(DB)조차 갖추고 있지 않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요양원이 치매 등 노인성 질환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촉탁의의 방문 진료에 노인들의 건강관리를 의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상희 보건복지부 요양보험운영과장은 “올해 상반기 DB를 구축해 촉탁의를 관리하고 대한의사협회 등과 협의해 촉탁의 교육제도를 도입하는 한편 서비스 매뉴얼을 보급해 양극화에 따른 문제를 줄이겠다”고 말했다.

조건희 becom@donga.com·이지은 기자

김정민 인턴기자 인하대 의학전문대학원
#요양원#노인#방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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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5

추천 많은 댓글

  • 2016-03-08 06:49:30

    우리의 이 절박(切迫)한 복지(福祉) 또 있을까요.? 편히 잘 계시던 노인들도 자식 폐 안 끼치겠다 작심, 요양원 입실계획 짜시던데 국가가 나서서 깊이 관리하시고, 입실전 상세한 안내받을수 있게 시,군,구, 투명한 조처 있어야 합니다.

  • 2016-03-08 09:46:57

    이집트와 태국은 다시 군사정권 되었다. 정치는 그 나라 국민수준이다. 국회의원은 도덕적으로 깨끗하고 출세협잡 사적탐욕 없는 이타정신과 공익위한 희생정신 있어야 한다. 19대국회의원은 세월호 참사 316명사망을 미결로 남긴 범인들로 모두 낙선시켜 독일수준은 되어야한다.

  • 2016-03-08 05:19:00

    양로원을 고려원으로 바꾸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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