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유엔이 ‘지속가능발전목표’를 발표했고 프란치스코 교황은 ‘생태회칙’을 공표했다. 프랑스 파리에서는 기후변화협약이 체결됐고 다보스 포럼에서도 지구적 복합 위기에 대해 깊은 우려가 나왔다. 이런 움직임은 국가와 사회, 산업 구조는 물론 개인의 삶의 방식에 이르기까지 기존의 사고방식으로는 대처하기 어려운 상황이 다가오고 있음을 뜻한다.
대학도 예외일 수 없다. 고등교육을 둘러싼 환경이 급변하고 있다. 하지만 국제기구나 시민단체, 일부 선도 기업에 비하면 대학은 변화 앞에서 가장 느린 행보를 보이고 있다.
경희대는 2009년 개교 60주년을 계기로 ‘대학은 왜 존재해야 하는가’, ‘미래 대학의 요건은 무엇인가’라는 근본 화두에 주목해 왔다. 2011년 후마니타스칼리지를 설립해 교양교육을 다시 정의하고, 연계 협력 클러스터를 통해 미래 지향적 학문 단위를 기획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1964년에 작성된 ‘경희 미래 메시지’ 50주년을 기념해 2014년 재학생 1만4000명 등 전 구성원을 대상으로 대규모 의식 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가 지난해 봄 출간된 ‘미래 대학 리포트 2015’에 담겼다. 지난해 하반기에는 학생, 교수, 직원을 대상으로 ‘총장과의 대화’가 이어졌다.
경희대는 2019년 개교 70주년을 앞두고 올 한 해 ‘함께하는 대학 혁신’을 화두로 교육과 연구의 탁월성을 강화하는 동시에 행정과 재정, 인프라 등 대학 운영 전반을 혁신할 계획이다. 안으로는 ‘미래 대학 리포트 2015’와 ‘총장과의 대화’를 통해 수렴된 구성원의 꿈과 희망을 실현하고 밖으로는 대학의 사회적, 지구적 공공성을 구현하기 위해서다.
조인원 총장은 지난달 2016학년도 1학기 합동교무위원연찬회에서 파리 기후변화협약에 대처하는 우리 사회의 모습을 전하며 미래 전망과 준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조 총장은 “파리 기후변화 협약을 앞두고 우리 정부는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37% 줄이겠다는 방안을 국제사회에 제시했지만 국내 관련 업종 단체와 기업들이 반발했다”면서 “기후변화협약 체결 이후의 미래를 내다보며 대체 에너지원 개발 등 체계적인 대응 방안을 준비해 오지 못한 기업과 정부는 충격에 빠졌다”고 소개했다. 조 총장은 “이는 문명의 흐름과 세계 정세를 잘 파악하지 않으면 국가적으로 큰 재앙을 맞을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며 “대학 역시 비슷한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조 총장은 “미래를 전망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것이 다가올 재앙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며 “대학도 비슷한 맥락에서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 그 역할을 ‘21세기 대학혁신위원회’가 하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21세기 대학혁신위원회(혁신위)는 연말까지 단기, 중장기 과제를 포함한 종합보고서를 작성하는 것을 목표로 3월 말 출범할 예정이다. 혁신위는 교육·실천혁신위원회와 학술진흥위원회, 행·재정혁신지원단으로 구성된다. 이와 함께 실행위원회를 둬 혁신위에서 수립한 안건이 즉각 정책으로 반영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조 총장은 “혁신위는 모든 과정을 개방하고, 모든 구성원이 참여하도록 해 미래를 대비하는 창의적 아이디어와 함께 구성원 모두의 긍지와 포부를 담아 낼 것”이라며 “경희인 모두가 자랑스러워하는 대학다운 대학의 미래를 만들어 내는 데 뜻을 모아 달라”고 당부했다.
▼핵심 축 ‘5대 연계 협력 클러스터’▼
지역-기관과 협력해 글로벌 네트워크 구축
경희대가 추진하는 학문 단위의 미래 지향적 기획, 즉 ‘5대 연계 협력 클러스터’는 대학 혁신의 핵심 축이다. 바이오헬스, 미래과학, 인류문명, 문화예술, 사회체육 등 5대 클러스터는 학내 모든 전공과 학과, 연구기관은 물론 국내외 유관 기관과 협력해 융복합 분야의 새로운 모델을 창출할 계획이다. 특히 관산학 협력을 통해 지역과 협력하면서 글로벌 네트워크도 구축하고 있다.
현재 바이오헬스와 미래과학 클러스터가 서서히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서울캠퍼스 인근 홍릉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바이오헬스 클러스터에는 한의학, 약학, 간호과학을 포괄하는 ‘의과학 경희’의 역량이 결집된다. 바이오헬스는 국민의 건강과 삶의 질을 높이는 국제 수준의 연구 성과를 창출하는 것을 목표로 관산학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서울시와 ‘홍릉 바이오의료 클러스터’를 구축하고, 삼성전자와 바이오헬스 분야 산업을 특화할 계획이다.
미래과학 클러스터는 공학 순수과학 생명공학 인문학 등 관련 학문 분야를 통합하는 것을 시작으로 대학, 연구소, 기업, 정부, 지자체 등과 협력하면서 다양한 연구 및 교육 프로그램을 추진한다. 플렉서블 나노소자, 디스플레이, 미래형 에너지 등을 체계적으로 육성해 세계 수준의 융복합 학술기관으로 성장하는 것이 목표다. 미래과학 클러스터는 국제캠퍼스에 ‘경희글로벌텍’(가칭)으로 확대될 예정이다. 지난해 중소기업중앙회, 한국여성벤처협회 등과 양해각서(MOU)를 맺고 구체적 설계에 들어갔다. 미래과학 클러스터 형태로 학문 단위를 기획하기 위해 생명과학대와 공과대 등은 그간 구성원의 의견 수렴 과정을 거쳐 학과 개편안을 도출했다.
5대 연계 협력 클러스터는 바이오헬스와 미래과학에 이어 인류문명, 문화예술, 사회체육 부문이 차례로 출범을 앞두고 있다.
▼학생이 주도하는 창의적 학습… “교육 패러다임 바꾼다”▼
후마니타스칼리지 ‘독립연구’ 교과 신설
‘더 나은 인간, 더 나은 세계를 향한 교육’을 기치로 2011년 출범한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가 올해 ‘후마니타스 2020’과 함께 새로운 차원으로 도약한다. 지난해 포브스지가 선정한 ‘아시아 10대 교양대학’에 꼽힌 후마니타스칼리지는 지난 5년의 성과를 토대로 교양교육 전반의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그 첫걸음으로 후마니타스칼리지는 자율적이고 창의적인 학습권을 보장하는 ‘독립연구(independent study)’ 교과를 신설했다. 독립연구는 2009년 학생의 수업권을 보장하기 위해 경희대 총학생회가 도입한 ‘배움학점제’와 후마니타스칼리지의 ‘시민교육’ 교과의 취지를 확대해 학습자 중심의 교육을 정착시키기 위한 2학점 자유 이수 교과다.
독립연구는 학생이 개인 혹은 팀을 구성해 연구 과제를 설계하고 직접 섭외한 담당 교수의 지도 아래 한 학기 동안 탐구한 뒤 평가받는 방식이다. 주제 영역은 연구(전공·교양), 실천, 참여, 창업 등 다양하다. 연구 과제 구상을 마친 학생은 계획서를 작성해 연구를 수행하고, 학기 말에 활동보고서와 실적물(논문, 포트폴리오, CD 등)을 제출한다. 이번 학기에는 연구과제 76개(서울 55개, 국제 21개)가 접수돼 지도교수 57명과 학생 172명이 참여하고 있다.
경희대의 독립연구는 국내 대학 최초로 교양과 전공을 불문하고 전교생을 대상으로 개설되었다는 점, 기존의 학제와 학문이 담보해 주지 못하는 창의적 연구와 실천 영역을 학생 스스로 개척할 수 있다는 점에서 대학가에서 주목받고 있다. 지난해부터 경희대에서는 고등교육의 패러다임이 ‘교육에서 학습으로’ 전환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이에 따라 일방적인 지식 전수에서 벗어나 교수와 학생이 소통하면서 교육, 연구, 실천이 유기적으로 결합되는 새로운 모델을 모색한 결과물이 바로 독립연구다.
독립연구의 총괄PD를 맡은 김동건 교수는 “자기주도형 학습 모델을 반영한 수업 방식은 학생에게 스스로 문제를 찾고 해결해 나가는 능동적인 자세와 학문에 대한 열정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