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시는 하루 110만 t의 수돗물을 부산시민 350만 명에게 공급하고 있다. 하지만 부산시청에서 음용수로 제공하는 물은 수돗물이 아니라 말통 생수다. 부산시장과 공무원들은 최근 안전성 논란이 일고 있는 기장군 해수담수화 수돗물을 마시는 퍼포먼스를 했는데, 정작 자신들은 평소에 수돗물을 마시지 않고 있었다. 공무원들의 일회성 행사가 기장 주민들에게 모욕적인 이벤트로 받아들여진 것은 이런 배경 때문이다.
물론 부산시만 그런 것은 아니다. 수돗물시민네트워크 조사에 따르면 지자체 청사에 수돗물 음수대가 설치되어 있는 곳은 서울시 광주시 대전시 정도다. 환경부도 시민단체와 언론의 지적을 받고 나서야 지난해 가을 급히 음수대를 설치했다. 수돗물시민네트워크가 167개 지자체에 음수대 설치 계획을 문의했을 때도 안양시와 군산시만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는 답을 내놨다.
지자체들은 수돗물 공급자로서 법적인 기준에 맞는 물을 공급하는 것을 자신의 임무로만 이해하고 있다. 수돗물을 마시는 이들이 겪는 불편이나 불안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다 보니 시민이 수돗물을 외면해도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
수돗물은 근대문명의 토대이고 인간의 수명을 획기적으로 늘린 최고의 발명품 가운데 하나다. 수돗물을 직접 마시지 않더라도 음식의 조리, 얼음 사용, 샤워 등의 과정을 통해 간접 흡입을 하게 된다. 결국 수돗물을 접할 수밖에 없다. 환경부 예산의 3분의 2인 4조 원이 물 관련 예산이고 정부의 수자원 예산 12조 원이 궁극적으로 수돗물 공급과 연결된다. 그런데도 수돗물을 직접 마시거나 끓여서 마시는 국민이 겨우 40%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위생과 환경의 측면에서 문제를 야기하는 정수기와 생수를 이용하고 있다.
시민이 수돗물을 마시지 않는 이유는 원수에 대한 불안, 녹물과 약품 냄새에 대한 거부감, 수돗물 공급자(지자체)에 대한 불신이 각각 비슷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앞의 두 가지가 기술과 공정의 개선으로 상당히 해소되거나 충분히 통제되고 있음에도 수돗물의 음용률이 높아지지 않는 것은 결국 정부에 대한 믿음이 낮기 때문이다.
3월 22일은 유엔이 정한 물의 날이다. 한국의 물 정책을 바로 세우기 위해선 수돗물부터 다시 고민해 봐야 한다. 지자체 청사에 수돗물 음수대를 설치하고 공무원들이 수돗물을 마시는 일, 이것이 물 정책의 새 출발이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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