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여곡절 끝에 이달 초 북한인권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북한인권법 제15조는 통일부 장관에게 국군포로와 납북자의 송환, 이산가족 상봉 등에 관한 계획을 수립하고 추진한 뒤 이를 국회에 보고하라는 의무를 지웠다. 역사상 처음으로 정부에 납북자 문제 해결의 책무가 있음을 법에 명시한 것이다.
수학여행 갔던 학생, 바다에서 고기를 낚던 어부, 인권운동 하던 목사, 대한항공(KAL)기 승무원과 승객들, 해군과 해경까지…. 납북된 우리 국민이 517명이나 된다. 이들이 멀쩡히 북한에 살아 있다는 증거가 나와도 북한은 무조건 생사를 확인할 수 없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하거나 이산가족 상봉 때 끼어 극소수만 만났을 뿐이다. 만날 때마저도 납북자라는 말조차 꺼내지 못하고 헤어졌다.
이번에 북한인권법이 통과된 것은 북한에 납치된 자식과 형제들을 수십 년간 그리워하며 눈물 흘려온 납북자 가족들에게는 반가운 소식이다. 하지만 법이 생겼다고 정부가 납북자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설지는 의문이 든다.
북한인권법의 제정만으로 그동안 납북자 가족들을 슬프게 해온 일이 해결될 수 없기 때문이다. 북한인권법이 강조한 대로 자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는 국가의 책무를 다하기 위해 정부가 납북자 문제를 반드시 해결해야 함에도 이를 위한 전담기구조차 없다.
이런 상황이기에 납북자 가족들은 납북자가 어떻게 납치됐는지,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조차 알 수 없다. 현재 납북자 문제는 통일부 이산가족과 직원 한 명이 담당한다. 전담기구 없이 북한인권법이 명시한 납북자 해결의 의무를 정부가 잘 이행할 수 있을까. 사정이 이런데도 어느 국회의원은 내게 납북자 전담부서를 설치하면 북한이 항의한다고 얘기한다. 북한에 납치된 학생은 우리 국민이 아니란 말인가.
지난해 홍용표 통일부 장관이 납북자 가족들을 초대한 적이 있었다. 당시 홍 장관을 만났던 한 어머니는 매일 아침마다 밥상을 차리고 뒷산에 올라 나무를 붙잡고 빈다. 아들 이민교의 얼굴을 한 번만이라도 보게 해달라고 매일매일 갈망하는 것이다. 하지만 북한은, 납북자 가족을 면담한 뒤 “북한이 천륜을 어겼다”고 말한 홍 장관을 오히려 비난하며 적반하장의 모습을 버리지 않고 있다.
이제 정부는 납북자 업무를 전문적으로 추진하는 체계적인 기구를 만들어야 한다. 이는 납북자 가족들의 마음을 위로하는 첫걸음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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