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데이트폭력 방지-민생법안 등 폐기 위기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3월 21일 03시 00분


두달 남기고 멈춰선 19대 국회… 법사위 법안 72% 처리 못해

#1. 지난해 2월 헌법재판소가 간통죄를 위헌으로 결정하면서 간통 혐의로 유죄 확정판결을 받은 피고인들의 재심 청구가 전국 법원에서 잇따랐다. 재심을 청구한 피고인의 상당수가 무죄로 인정됐지만 이들의 표정은 아직 어둡기만 하다. 재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으면 현행 형사소송법 440조에 따라 피고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이름과 생년월일, 직업, 주소 등 신상정보가 담긴 판결문이 모두 관보에 공시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재심 청구인의 신상 노출을 막기 위해 원하지 않으면 관보 공시를 하지 않을 수 있도록 하는 형사소송법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현재 국회 한구석에 잠들어 있다.

#2. 지난해 한국의 법률서비스 분야 무역수지 적자는 5억6920만 달러(약 6800억 원)였다. 국내 기업이 외국의 국제중재 기관에 사건을 맡기는 경우가 많아서 생긴 결과다. 법무부는 불필요하게 외화가 해외로 유출되는 것을 막고 국내에 국제중재 시장을 만들기 위해 지난해 국회에 ‘중재산업진흥법’을 제출했다. 정부는 중재산업을 활성화해 싱가포르 수준(연 260건)의 중재사건을 한국에 유치하면 연간 6000억 원가량의 경제효과가 있을 것으로 추산했다. 하지만 이 법안은 19대 국회 회기가 끝나면 자동으로 폐기된다.

19대 국회가 역대 최악의 ‘무능 국회’로 기록될 것으로 전망된다. 19대 국회 회기 마감을 두 달여 앞두고 국회에서 발의된 각종 민생 법안 처리가 4·13총선 탓에 올스톱돼 있다. 법무부 소관 법안을 심의하는 법제사법위원회도 마찬가지여서 형법 민법 관련 개정안 등 국민에게 중요한 법안들이 19대 국회 마감과 함께 무더기로 자동 폐기될 위기에 놓였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20일 현재 법사위에 계류돼 있는 법안은 총 928건으로 19대 회기 동안 발의된 전체 법사위 소관 법안 건수(1296건)의 71.6%에 이른다. 국회 회기 만료로 폐기되는 법사위 소관 법안의 비율이 16대(43.9%), 17대(46.7%), 18대(59.2%) 국회와 비교해 지나치게 높다는 평가가 나온다. 입법기관인 국회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한 것이다.

법사위 소관 발의 법안들은 잇따른 데이트폭력, 관대한 부패범죄 처리 등 국민의 공분을 산 사안과 관련성이 높다. 법사위에는 스토킹을 동반한 데이트폭력을 사전에 막기 위한 ‘스토킹 방지법’ 관련 법안 3개가 계류돼 있다. 스토커에게 최대 5년 이하의 실형을 선고하는 것이 핵심이다. 현행 스토커 관련 처벌 규정은 벌금 10만 원이 전부다.

또 형법상 횡령·배임죄가 부패 재산을 몰수할 수 있는데도 더욱 엄중하게 처벌하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배임죄는 그렇지 못한 허점을 고치기 위해 제출된 부패재산몰수법 개정안도 자동 폐기될 위기에 놓였다. 전월세 전환율 상한선에 대한 계산법을 포함하고 있어 민생에 직접 관련이 있는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도 마찬가지다.

계류 법안들이 폐기되면 20대 국회에서 다시 입법하기 위해 불필요한 시간을 들여야 한다. 정부 법안의 경우 다시 관계 부처 협의와 입법예고, 법무심의관실 심사, 법제처 심사, 차관회의 의결, 국무회의 의결 절차를 거쳐 국회에 발의해야 한다. 의원발의 법안은 의원들이 총선을 통해 바뀌기 때문에 상당수 법안은 다시 발의될 기회조차 얻지 못할 수도 있다.

김준일 기자 jikim@donga.com
#데이트폭력#민생법안#국회#법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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