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고미석]로봇이 피자 배달한 날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3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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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단은 조립 과정의 사소한 실수였다. 엔지니어가 샌드위치를 먹다 마요네즈 한 방울을 떨어뜨리면서 보통 로봇과는 달리 호기심 넘치는 로봇이 탄생했다. 애당초 ‘불량로봇’으로 출발한 것이 훗날 인간처럼 개성과 자유를 갈망하는 특별한 로봇으로 발전하는 자양분이 된 것이다. 1976년 발표된 아이작 아시모프의 과학소설을 바탕으로, 로빈 윌리엄스가 가정용 로봇 앤드루로 출연한 영화 ‘바이센테니얼 맨’의 내용이다.

▷가사도우미까진 아니어도 로봇의 피자 배달 시대는 코앞에 닥쳤다. 최근 호주 브리즈번에서 로봇의 피자 배달을 실험했다. 도미노피자가 군사용 로봇을 개량해 만든 네 바퀴 로봇이다. 배달로봇은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을 이용해 자전거도로와 인도를 따라 스스로 장애물을 피해 가며 주소지를 찾아냈다. 시속 20km로 한 번에 10판의 피자 배달이 가능하다. 이웃나라 뉴질랜드에서도 따라 할 모양이다.

▷이제 피자 배달 일자리가 사라지는 건 시간문제다. ‘로봇기자’와의 경쟁이 시작된 처지라서 남의 일 같지가 않다. 2020년까지 일자리 500만 개 이상을 로봇이 대체할 것이란 세계경제포럼(WEF)의 전망은 알파고-이세돌의 대국을 계기로 더욱 뼈아프게 다가온다. 기자든 가사도우미든 능력이 비슷하면(혹은 다소 떨어져도) 로봇을 선택할 이유는 충분하다. 월급 인상을 외치며 파업하는 일도 없고 휴가와 더 나은 복지를 찾아 다른 곳으로 옮겨가는 일도 없을 테니 말이다.

▷아직 기회가 있다. 획일화된 기계를 닮기 위해 애쓰기보다 인간의 불완전함을 직시하고 강점으로 만드는 것이다. 로봇 앤드루에게 과학자가 이런 말을 들려준다. “못 믿겠지만, 기술의 핵심은 불완전성에 있다. 내 코를 봐라. 주먹코에 비뚤어졌다. 이 코가 나만의 특징을 갖게 한다.” 외모가 그렇듯 모든 면에서 완벽한 사람이란 없다. ‘창조적 파괴’는 결함을 인간다움의 정체성으로 수용하고 발전시키는 역발상에서 가능해진다. 인류가 핵심 경쟁력을 키우고 기계에 예속되지 않는 길은 바로 거기서 시작될 것 같다.

고미석 논설위원 mskoh119@donga.com
#로봇#배달#기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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