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계획 정책이 막바지에 달한 1990년대 초. 정부는 셋째 아이부터 출산비용을 의료보험 대상에서 제외했다. ‘인구조절’이라는 명분으로 지금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을 벌인 것이다. 이처럼 횡포에 가까운 정부의 반강제적 인구정책은 1970년부터 시작해 30년 넘게 이어지면서 우리 사회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최악의 저출산 국가로 전락하는 등 부정적인 면도 있었지만, 긍정적인 면도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무엇보다 여성 권익 향상에 크게 기여했다. 1970년대 초 가부장 문화가 지배하던 시절, 여성은 피임이나 출산에 대한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어려웠다. 정부에서 피임방법에 대해 교육을 시키고, 피임기구를 무료로 보급한다고 해도 남편이 거부하면 어쩔 수 없었다.
정부는 가족계획사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려면 여성이 역할이 중요하다고 판단하고, 동네마다 부녀회를 만들어 적극적인 홍보에 나섰다. 시간이 흐르면서 여성이 임신과 출산에 대한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고, 국민 의식에도 조금씩 변화가 나타났다. 이런 흐름은 여성의 권익 향상으로 이어졌다. 자녀수가 줄면서 여자 아이가 남자 아이와 비슷한 수준의 교육을 받게 된 것도 변화의 흐름을 가속화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태아 감별 탓에 ‘불법 낙태’ 횡행
하지만 남아선호사상이 뿌리 깊은 상황에서 정부의 산아제한 정책은 불법 낙태를 사실상 부추기는 부작용을 낳았다. 산부인과는 공공연히 불법 낙태수술을 했고, 사회적으로도 이를 묵인하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정부 지원을 받아 무료로 가능했던 여성들의 루프시술이나 난관수술도 무분별하게 자행됐다. 여성 불임시술은 생리 직후 임신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하는 것이 원칙이다. 하지만 가족계획 실적을 올리려는 의료기관들은 임신한 여성도 당사자가 원하면 임신중절수술과 동시에 불임시술을 했다.
1980년대에 접어들면서 초음파 기기 개발 등 현대의학의 발전으로 출산 전 태아의 성별을 확인할 수 있게 되자 불법 낙태가 더 늘었다. 하나든 둘이든 적게 낳아 잘 키울 바에 여아보다는 남아를 낳으려는 부모가 많았기 때문이다.
1983년 당시 한국갤럽조사연구소가 18~60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기혼 여성 중 한번이라도 낙태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 무려 44.2%에 달했다. 특히 40대에서는 55.4%로 절반이 넘었다. 2명 중 1명 이상이 낙태 경험이 있다는 이야기다. ‘여 100’ vs ‘남 130’
무분별한 낙태는 남녀출생성비의 심각한 불균형으로 이어졌다. 정상적인 남녀 출생성비는 여아 100명을 기준으로 남아 103~107명이다. 통계청의 출생 통계자료를 보면 1980년대 초까지 남아 107명 수준이던 성비가 1986년 111.7명, 1990년 116.5명으로 급증했다. 지역에 따라 남아가 무려 130명까지 치솟는 곳도 나타났다. 같은 또래의 여아에 비해 남아가 30명이나 많은 기형적인 ‘남초 현상’이 나타난 것. 이런 추세가 계속된다면 이들이 결혼적령기가 될 때 여성이 부족해 외국에서 신부감을 들여와야 되는 사태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
뒤늦게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국회는 1987년 의료법을 개정해 태아성감별 금지 규정을 신설했다. 만약 이를 어기는 의사는 의사면허 취소 및 3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는 강력한 벌칙조항도 포함했다.
덕분에 출산 전 성감별을 통한 낙태수술이 현저히 줄었고, 2000년대 접어들면서 사회 분위기가 바뀌어 남아선호사상도 거의 사라졌다. 요즘엔 오히려 아들보다 딸을 선호하는 분위기다. 이를 반영하듯 2013년 남아 출생성비는 105.3명으로 정상범위로 회복했다.
헌법재판소는 이 같은 흐름을 반영해 2008년 “임신후반기인 32주 이후부터 태아의 성별을 임부 본인 또는 가족에게 알려줘도 된다”면서 태아성감별 금지 규정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육아업체 줄도산에 폐교 잇달아
이제 정부는 세계 최저 출산율 때문에 고민하는 처지가 됐다. 우리나라가 출산율 1%를 목표로 한창 산아제한 정책을 펴던 1980년대에 선진국들은 이미 인구감소에 대한 대책을 고민했다. 선진국의 사례를 연구하면서 산아제한에 속도조절을 했다면 어땠을까.
정부는 이제 와서 갖가지 출산장려대책을 내놓지만 묘안은 없어 보인다. 출산 억제에 앞장섰던 대한가족계획협회가 2002년 대한가족보건협회를 거쳐 2005년 인구보건복지협회로 간판을 바꾸고 사업목적도 변경해 ‘자녀 많이 갖기 운동’을 펼치지만 별무소용이다.
최근 10년 동안 우리나라의 출산율은 1.18에 지나지 않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1.7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 수치다. 출산율 저하에 따른 후유증이 사회 곳곳에서 나타난다. 시골에는 산부인과가 사라지고, 육아 관련 업체가 줄줄이 도산하거나 외국 업체로 넘어갔다. 초등학교 학생 수도 급격히 줄어 문을 닫는 학교도 점점 는다. 65세 이상 노인인구 비율이 12.7%를 기록하며 세계에서 유례없이 빠른 속도로 초고령 사회로 진입했다.
인구구조도 삼각형에서 역피라미드로 바뀌는 중이다. 문제는 저출산 문제가 쉽게 해결되지 않으리라는 것. 임신과 출산에서 해방된 여성을 다시 해방 전의 자리로 끌고 오기란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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