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급 빌라와 대형 사무용 빌딩이 모여 있는 서울 강남구 영동대로 봉은중학교와 경기고등학교 근처. 이곳에 백제시대 토성이 있었다면 믿을 수 있을까. 바로 강남 개발의 광풍 속에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잊혀진 ‘삼성동토성’이다.
1917년 일제는 ‘조선고적조사보고’라는 책에 ‘삼성리토성은 광주군 언주면(현재 삼성동)에 있는데 북으로는 한강에 접하고 한강을 사이에 두고 뚝섬 방향을 내려다보는 산성으로 토성이다’라고 기록했다.
삼국시대에 조성된 토성은 한양도성처럼 돌로 만들어진 성벽과 달리 주변보다 높은 지대에 흙을 쌓아 만들었다. 1933년과 1948년 두 차례 토성 자리(현 경기고)에서 연꽃무늬 와당(瓦當)이 발견돼 삼국시대, 특히 한성백제 때 지어진 것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1980년대까지 흔적이 발견되기도 했지만 제대로 된 발굴 조사 없이 사라졌다. 현재 토성의 북벽 자리로 추정되는 곳에는 청담배수지가, 동벽 자리에는 올림픽대로가 들어섰다. 또 남벽 자리에 봉은중이, 서쪽에는 힐탑빌라가 자리하고 있다.
지금은 자취를 감춘 삼성동토성의 실체를 확인하기 위해 서울시가 시굴 조사에 나서기로 했다. 서울시는 최근 삼성동토성 추정지와 주변 지역 발굴을 위한 기초 조사 용역을 마쳤다고 22일 밝혔다. 시굴 작업이 본격적으로 추진되면 그간 추측만 되어 왔던 삼성동토성의 실체를 최초로 규명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서울시는 삼성동토성을 한성백제 왕궁을 보호한 ‘방어성’으로 추정하고 있다. 풍납토성의 북쪽은 아차산성이, 서쪽은 삼성동토성이 방어했다고 보는 것이다. 학계에서는 삼성동토성이 한강과 맞닿아 방어성의 역할뿐 아니라 강을 통해 도성으로 들어오는 지방이나 외국의 선박 통제 역할도 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삼성동토성의 성격이 명확히 규명되면 백제 왕도로서의 ‘한성’은 더욱 완성된 모습을 갖추게 된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충남 공주 부여 등의 백제 문화유적지구는 △왕릉 △왕성 △종교 시설 △방어성 등 크게 4가지 요소를 갖추고 있다. 서울은 현재 풍납·몽촌토성(왕성), 석촌동·방이동 고분(왕릉)을 갖추고 있고 종교 시설은 확인된 바가 없다. 서울시 관계자는 “삼성동토성이 방어성으로 확인된다면 서울시 백제 전기 유적 4개 요소 중 3개를 갖추게 되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시굴 작업은 토지 소유주와의 협의 등 까다로운 절차를 넘어야 한다. 강희은 서울시 역사문화재과장은 “역사성 규명에 적합한 지역을 선정해 단계적으로 신속히 시굴해 2000년 역사 도시 서울의 정체성을 확립하겠다”며 “주민들과 최대한 협의해 불편이 없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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