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세상]내 아이가 살게 될 세상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3월 24일 03시 00분


손수지 주부·전 엔자임헬스 차장
손수지 주부·전 엔자임헬스 차장
연초에 배 속에 새 생명이 자라고 있다는 기쁜 소식을 들었다. 주변에 아이가 생기지 않아 마음고생을 하는 부부가 워낙 많아서 걱정했는데, 다행히 큰 기다림 없이 아이가 찾아왔다. 입덧으로 몸 상태가 좋지 않아 고생하고 있지만, 하루하루 자라는 태아를 보며 생명의 신비를 느끼고 있다.

어릴 때부터 유난히 아이를 좋아했던 나는 결혼하면 되도록 여러 명의 자녀를 낳겠다고 다짐했었다. 무슨 배짱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아이를 잘 키울 수 있으리라는 자신감이 넘쳤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 그런 자신감은 두려움으로 바뀌었다. 남편에게는 차마 말하지 못했지만, 결혼을 앞두고는 ‘아이를 낳아 키우는 일이 과연 옳은 것인가’라는 생각에 깊이 빠지기도 했다.

아는 것이 병이다. 먼저 아이를 낳아 양육하는 친구들을 보니 육아라는 것이 정말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안아 주지 않으면 아예 잠을 안 자는 아기들도 있고, 젖병을 거부한 채 엄마 젖만 찾는 고집쟁이도 있었다. 조금 자라면 언제 어디서 말썽을 부릴지 몰라 늘 긴장 상태로 지내야 하는 일도 부지기수였다.

그렇다고 이런 문제 때문에 출산 자체를 고민한 것은 아니다. 나와 남편, 넓게는 가족의 헌신으로 어떻게든 이겨내겠다고 다짐할 수 있다. 과거에 내가 인생의 중심이었다면, 당분간은 아이 위주로 살아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내 의지로 해결할 수 없는 여러 가지 일들이다. 세상이 발전하고 좋아졌다고 하지만, 과연 내 아이가 더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곳이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답하기가 힘들다. 앞으로 이 나라가 더 살기 좋은 곳이 될 것이냐는 물음에도 “그렇다”고 자신 있게 답하지 못하겠다.

나는 운이 좋은 사람이라 생각한다. 하고 싶은 공부를 일찍 찾아 대학에서 원하는 공부를 했고, 재주를 살려 작지만 좋은 회사에 취업할 수 있었다. 지방 출신이라 서울살이의 고단함을 느끼긴 했지만 좋은 친구들과 어른들을 만나 빠르게 생활의 안정을 찾았다.

그런데 최근 몇 년 사이 나와 같은 ‘운’은 기대하기 어려워진 것 같다. 내가 대학을 졸업한 10년 전 무렵에도 취업은 어려운 일이었다. 그때는 소가 통과할 바늘구멍이라도 있었다면, 지금은 그 구멍이 더 작아지거나 아예 막혀 버린 것 같다. 어린 친척 동생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공무원시험을 준비 중이다. 이른바 명문대를 졸업해 대기업에 취직한 주변인들도 회사 사정이 나빠져 고용에 문제가 생길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내 아이가 살아갈 미래는 어떨까. 제 앞가림은 하고 있지만, 금수저 아닌 부모를 만났으니 어릴 때부터 ‘무한 경쟁’으로 던져질 것이다. 직장 어린이집에 맡길 수 있는 조건이라면 다행이지만, 아니라면 어린이집 입소부터 경쟁이 시작될 것이다. 공부를 잘하거나 특기 적성이 있어도 경제적인 이유로 포기부터 배워야 할 수도 있다. 더 자라 어른이 된 후에는 직업을 얻지 못해 고생할 수도 있고, 사회 격차가 심해져 보이지 않는 장벽 때문에 눈물 흘릴 날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엄마인 나의 인생도 문제다. 잠시 회사를 쉬면서 새로운 진로를 찾던 중 아이가 생겼다. 임신한 몸으로는 재취업이 쉽지 않은 데다 출산 후 사회로 쉽게 돌아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부모님은 괜한 걱정은 넣어두라고 하신다. 하지만 부모라면 아이를 더 잘 키울 수 있는 환경과 세상을 꿈꾸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자식은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지만, 늘 다짐했던 대로 가정에서는 남의 처지를 헤아릴 줄 아는 사람으로 양육하고 싶다. 더불어 아이에게 “개인의 노력으로 많은 것을 바꿀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해줄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무언가 해야 할 것 같다. 그동안 선거에서 나를 위한 공약을 살폈다면, 이제부터는 내 아이를 위한 나라를 만들려고 애쓰는 곳이 어디인지 더 꼼꼼히 신경 쓸 것이다. 혼자 생각하고, 불평만 해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작은 일이라도 더 나은 세상을 만들 방법이 있다면 실천을 위해 노력하겠다.
 
손수지 주부·전 엔자임헬스 차장
#육아#사회 격차#재취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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