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훈의 SNS 민심]송중기의 매력과 판에 박힌 에로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3월 25일 03시 00분


김도훈 아르스프락시아 대표
김도훈 아르스프락시아 대표
아내가 좀 이상하다. 일찍 자던 그녀가, 늦은 시간에 자리를 뜬다. 그녀가 눌러앉은 소파의 거실과, 복도 건너편 내 방 사이에는 미묘한 침묵이 돈다. 그녀가 응시하는 저 TV 스크린에는, 필경 무언가가 있다. 그녀는 한마디를 남기고 홀연히 자리를 뜬다. ‘태양의 후예’를 봤다고.

이 드라마를 모른 척 넘겨왔지만, 이젠 봐야겠다고 다짐한다. 심호흡을 하고 TV 스위치를 켠다. 가장 열린 마음으로, 일단 모든 것을 받아주리라. 군대 갔다 온 남자가 용납할 수 없는 잘못된 호칭과, 말도 안 되는 설정이 중요한 건 아닐 테니까. 와인을 연거푸 쭉 들이켜니, 마음이 너그러워진다. 어느새 설레는 마음으로 가만히 미소 짓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그래, 나도 또 연애하고 싶다.

드라마는 젊은 두 남녀 유시진 대위(송중기)와 의사 강모연(송혜교)의 밀고 당기는 연애 이야기다. 흔히 볼 수 있는 설정이다. 그것만으론 한국 여성들의 열병이 이해가 안 됐다. 대중문화의 코드가 알고 싶어진다. 주로 30대 여성들이 결혼과 육아, 인테리어 구매 등에 대해 정보를 교환하며 일상사를 공유하는 커뮤니티 ‘레몬 테라스’의 데이터를 수집해 봤다. 드라마가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800여 건의 이야기가 모였다.

분석 시스템이 먼저 워드 클라우드를 보여준다. 데이터 분석자로서 그간 느껴본 적이 없던 허탈함과 배신감이 밀려온다. 가장 많이 언급된 단어가 송중기다. 그리고 ‘연기’ ‘멋지다’ ‘잘생기다’라는 연관어가 따라붙는다. 송혜교도 빈도가 송중기보다 조금 약하지만, ‘얼굴’ ‘예쁘다’ 등이 연관어로 뽑힌다. 이런 즉자적인 단순함은 받아들일 수 없었다. 설마, 뭔가 더 있겠지.

네트워크로 심층 분석을 시도한다. 송중기의 ‘멋지다’라는 연관어에는 ‘남자’와 ‘대사’라는 또 다른 연관어가 보인다. 그의 연기가 ‘멋있다’는 반응과 ‘군인’ ‘군복’이라는 검색어도 적지 않았다. 그가 곱상했는데, 제대하고 군인 역을 맡으니 남자다운 매력까지 살아난 것이다. 송혜교의 ‘얼굴’에는 ‘스타일링’이라는 단어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여자로서도 호감이 가는 그만의 아우라와 스타일이 있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요컨대, ‘별에서 온 그대’와 비견되는 인기를 끌기 시작한 이 드라마의 성공 요인은 무엇보다 매력적인 연기파 배우의 캐스팅이다. OST 노래가 좋고, 가끔씩 ‘심쿵’한 대사를 준비한 김은숙 작가의 필력이나, 최근까지 한국 드라마가 추구해 온 세련된 착한 남자 스타일이 놓칠지도 모르는 남성적 매력을 군대라는 이미지 소재를 활용하여 잘 보완해 놓은 설정도 중요한 변수로 도출된다. 그렇지만 뭐니 뭐니 해도 (‘남편’과 비교할 수 없는) 송중기의 ‘비주얼’이라는 ‘매력’을 따라갈 수 있는 것은 없다.

배우의 외모는 그렇다 치고, 남자나 여자나 다시 연애하고 싶게 만드는 이 드라마의 매개는 무엇일까. 유독 그런 문화 코드에 열광하는 한국과 중국 대중의 감성은 무엇일까. 일단 감성적인 매개는 설렘을 유발하는 타자(낯선 남자)와 타지(외국)의 낯섦이 아닐까 싶다.

철학자 한병철은 저서 ‘에로스의 종말’에서 ‘타자(他者)’를 설명한다. 우리는 나와 다른 사람을 타자라고 부른다. 에로스란 타자를 사랑하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사람들은 ‘나 자신을 사랑하자’며, 내 현재 정체성과 욕구와 동일한 ‘타자’를 갈구한다. 철학자는 그런 태도를 나르시시즘이라고 부르며, 자기애와 구별한다. 나르시시스트는 내 욕망과 동일한 타자를 소유하려 든다. 그러나 획일화된 동일성의 욕망 속에서 자신이 소유하게 된 타자는 더 이상 타자가 아니고, 그 관계 역시 에로스가 아니게 된다. 타자에 대한 상호 인정과, 타자 간에 지향할 수 있는 공통의 가치가 빈곤한 공간엔 우울이 찾아온다. 그럴 때 스크린에서 볼 수 있는 배우의 낯섦이, 순간의 치유감이나 대리 만족을 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느덧 한국에서는 사랑도 다분히 획일적인 소비문화가 되어버렸다. 드라마도 판에 박힌 모습이다. 그런 드라마보다 나은 관계를 상상하기란 어려운 것일까. 그들이 온전한 설렘을 현실화할 수 있으면 좋겠다.

김도훈 아르스프락시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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