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충만 세이브더칠드런 국내옹호팀장얼마 전 동료가 한 학부모에게서 전화를 한 통 받았다. 우리 단체가 요즘 진행하는 국회의원 선거 캠페인에 참여한 아이의 아빠였는데 “아무래도 내 딸이 의욕이 너무 넘친다”는 거였다. 이번 캠페인에서는 아이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문제를 직접 정당 대표들에게 물어보는 기회가 있다. 이 아빠는 딸이 너무 많은 질문거리를 준비하는 것 같다면서 “어린이는 정치 하면 안 돼요?”라는 질문도 있는데 이런 질문을 해도 되는지 물어보았다.
며칠 뒤, 이런 당돌한 질문을 품은 아이들이 한자리에 모였는데 요즘 겪는 어려움에 대한 이야기들이 끝도 없이 쏟아져 나왔다. “학원 8개를 다니는데 시간이 없어요. 생일파티 때도 2시간밖에 못 놀았어요. 학원 가는 시간을 줄여줄 수 있을까요?” “아빠는 서울에서 일해 주말에만 보고, 엄마도 일하는데 9시 넘어 오고, 오빠는 고등학생이라 기숙사 생활하니깐… 혼자 있는 게 좀 힘들어요.” “시골은 문구점이나 마트가 너무 멀고, 놀 곳이나 문화시설이 없어서 심심해요.” “아이들을 때리는 어른들이 감옥에 갔다가 금방 나와서 다시 우리를 괴롭힐까 봐 무서워요.”….
아이들에게 “그런 이야기를 어른들에게 해본 적이 있느냐”고 물어보았다. “어른들은 일 하느라 바빠서 우리 이야기에 관심 없어요. 공부나 하래요.” 다시 “학교에서 학급회의 시간을 이용해 선생님께 건의해보는 것은 어떤지” 물어보았다. “학급회의? 그거 1년에 한 번 하는데 그냥 장난 같아요.”
어린이들의 열띤 토론을 듣다 보니 그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문제에서 직접 그들의 의견을 듣는 일에 어른들이 얼마나 소홀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의 질문에 대한 답을 듣기 위해 만난 한 정치인은 이렇게 말했다. “정치권은 투표를 먹고 사는 동물이에요. 아이들은 투표권이 없으니 당연히 관심이 적을 수밖에 없죠.”
우리나라의 예산과 정책을 뜯어보면 그의 이야기가 현실을 그대로 반영했음을 알 수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2013년 연구에 따르면 아동가족 복지지출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0.8%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 2.3%에 한참 미치지 못한다. 정부의 아동복지예산 또한 전체 사회복지예산 중 0.25%에 불과하다. 이 중 대부분은 영유아 보육에 집중돼 있다. 그럼 정책은 어떨까. 이번 국회의원 선거에서 나온 정당 공약을 살펴보니 부모들의 표심을 얻기 위한 교육과 보육이 아닌 아동 관련 공약은 정말 손에 꼽을 정도다. 최근 아동학대 사건이 잇따라 발생해서 들어간 듯한 학대예방 관련 공약이 없었다면 아동공약 페이지는 아예 빼는 게 나을 뻔했다.
또 다른 정치인을 만났을 때는 “미래세대가 행복해질 수 있도록 더 좋은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좋은 말이지만 혹시 ‘미래세대’라는 말 뒤에 숨어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아이들의 어려움에 눈감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묻고 싶다.
2002년에 열린 아동에 관한 유엔총회 특별회의 선언문에는 이런 문구가 나온다. ‘당신들은 우리를 미래라고 부르지만, 우리 또한 현재랍니다.’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제일 듣기 싫어하는 말 중의 하나가 “너희들이 미래의 희망”이라는 표현이라고들 한다. 그들은 미래에서 사는 게 아니고, 지금 이곳에서 살아가는 ‘현재의 존재’다. 아동청소년 자살률이 급증했다는 통계가 보여주듯 ‘현재’ 고통받고 있는 그들의 어려움을 해결해 주려는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어른이 생각하는 행복과 어린이가 원하는 행복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고, 저희가 원하는 행복을 즐길 수 있도록 항상 물어봐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단체가 매년 진행하는 아이들의 삶의 만족에 관한 연구 결과를 발표하는 자리에서 축사를 해준 어린이대표가 한 말이다. 아이들의 말을 경청해 달라는 요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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